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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위로' 시각장애인 새로운 직업될까...대학생들의 실험

상담실은 빛 한 줄 새어들지 않는 방이다. 신청자들은 짙은 어둠에 처음엔 당황한다. 그러나 이내 익숙해진다. 어둠은 온전히 자신의 고민에만 집중케하는 효과가 있다. 괴팍한 직장상사 때문에 고생하는 이야기를 할 땐 한숨이 깊어진다. 자신도 입밖에 내기 전까지 몰랐던 고민의 무게를 실감하면서, 울어버리는 신청자도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은 경청한 뒤 "괜찮아요. 괜찮아요"라며 슬픔에 공명한다.
봄그늘 상담이 이뤄지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얼리브라운지 내 공간. 실제 상담시에는 불이 소등돼 블라인드 환경이 만들어진다. 신청자는 방에 안대를 끼고 들어간다. 신청자가 이 공간으로 들어갈 때에는 봄그늘 팀원들이 자리까지 유도한다. 출처 인터비즈
"이야기를 들어주신 덕분에 한결 나아졌어요." 45분 상담(마음보듬)이 끝난 다음에 신청자들이 남기는 메시지다. 상담 서비스 '봄그늘' 프로그램 신청자들은 상당수가 이를 완벽한 블라인드 상태에서 익명으로 대화하는 서비스로만 알고 있다. 이야기를 듣는 분들은 어떻게 어둠 속에서도 한 번의 동요도 없이 끝까지 차분한지 그 비밀을 끝까지 알지 못한 채 돌아간다. 


어쩌면 어둠 속에선 저희가 더 편안함을 느낄지도 모르죠


고민을 들어준 상담사(실제 프로그램상 역할 명칭은 '마음보듬사')들은 그동안 숱한 위안을 받아온 사람들. 중증 시각장애인들이다. 그들은 상담 이용자가 자리를 뜰 때까지 조금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방안에 머문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고, 그가 위안을 받아 돌아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시각장애인은 직업 선택 폭 지나치게 적어"...문제의식으로 시작

상담서비스 '봄그늘'은 현재 주5일 기준으로 3회 가량 운영된다.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등을 통해 신청을 받고, 서비스 회당 2만 원을 받아서 시각장애인의 급여로 제공하고 있다. 이는 서울대 사회적기업 모임인 인액터스에서 중증 시각장애인을 돕겠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지난해 11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도중에 이 학교 중어중문과 3학년 신민서 씨(22)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빛이 없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영화 어바웃타임에 소개돼 유명해진 영국 런던의 한 레스토랑 '어둠속의 저녁식사' 프로그램. 출처 해당 레스토랑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처음 만나 식당은 어두운 공간이다. 휴대폰까지 모두 캐비닛에 맡긴 뒤 웨이터의 지시에 의지해 움직여야 하는 장소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미리 주문한 코스에 맞춰 음식을 맛볼 수밖에 없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되레 차분해지고 다른 사람의 온기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각장애인과 연계한 상담 서비스를 구상한 것이다. 봄그늘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신 씨가 지난해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사실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과연 사람들이 암흑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할까? 이들이 마주한 첫 질문이었다. 과연 슬픔에 빠져 있을 중증시각장애인들이 과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줄만한 여유가 있을까, 라고 주변에서 묻는 경우도 있었다.
봄그늘 소속 대학생들과 시각장애를 딛고 활동하는 마음보듬사들. 출처 인앹
"안마사 외엔 할 수 있는 일 없어"...견고한 편견과 직업구조 깨는 게 목표

봄그늘 멤버들은 직접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나섰다. 가장 먼저 연락한 곳은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었다. 복지관에서 공지하자마자 긍정적인 반응과 회신이 많았다고. 
  
시각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이들끼리 서로 상담하는 동료 상담 프로그램이 잘 발달돼있다. 갑자기 장애를 맞닥뜨린 이들에게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장애인 동료가 동료를 돕는 상담 프로그램이다. 동료상담을 통해서 용기를 얻고 정신적인 지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출처 봄그늘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상담 교육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상담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상담가로 나서기란 쉽지 않다. 상담하는 에선 이들 인력을 활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시각장애인들 스스로조차 안마사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기 쉽다. 실제 시각장애인의 취업률은 38.3%에 불과한 데다가 그마저도 불안정한 일자리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제안은 반가운 일이었다고. 이틀만에 신청한 인력만 12명이었다. 이중에는 대학에서 상담교육을 받은 인력도 상당수였다. 봄그늘 소속 대학생들 또한 의외로 많은 중증시각장애인들이 대학 등에서 상담교육을 받은 사실에 놀랐다고. 이중 학업을 계속하거나 불안정한 수입 등에 어려움을 느끼고 중도에 포기한 인력도 있었다. 상담직을 반드시 하고 싶다며 남은 인력은 총 5명이었다. 이들이 현재까지 마음보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봄그늘 팀원들과 마음보듬사들. 출처 인액터스
함께 살아가는 세상...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와야 하는 이유

상담은 오랜 훈련 등을 거쳐야 하는 고도의 전문직종으로 굳어져 있고 일정한 교육시간을 이수해야지만 직업 상담가로 나설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대학에서 상담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이와 같은 교육을 이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관심을 가지고 공부는 할 수 있지만 직접 직업을 가지긴 어렵다고 생각해 추가적인 교육은 받지 않은 경우였다. 

이들이 직접 상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바로 현장에 나갈 순 없다. 봄그늘에서 '마음보듬'이라는 프로그램 명칭을 붙인 이유다. 프로그램도 직접적인 상담 보다는 고민을 경청하는 쪽에 더 집중한다. 블라인드 환경이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막기 위해 봄그늘 팀원들은 늘 마음보듬 활동 시간에 가까운 공간에서 대기한다. 기존에는 없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마음보듬사분들. 왼쪽부터 권미옥 씨(49), 김미숙 씨(46), 최명 씨(53). 이들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자존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출처 인터비즈
마음보듬사로 활동중인 권미옥 씨는 "처음엔 마음보듬 활동 설명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서로 고민을 나누고 상담하는 일을 참 좋아했는데 이를 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며 감격을 전했다. 마음보듬사 최명 씨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안마사 아니면 역학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업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음보듬사 김미숙 씨는 "마음보듬사라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앞으론 길이 열리겠구나'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음보듬사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인액터스 봄그늘 팀의 다음 목표는 이 프로젝트를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고, 보다 많은 시각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간도 더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봄그늘 프로젝트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걸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필요할지 모르죠. 위안의 크기를 늘려나갈 거예요.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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