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위 없고 상사 없는 이 회사.. 그래도 연 매출 1조

직위 없고 상사 없는 이 회사.. 그래도 연 매출 1조

[DBR]대기업 건설사에 다니는 김 과장은 내년 초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입사 후 꼬박 12년 만이다. 내년부터 후배들이 ‘차장님’이라고 부를 거란 생각을 하면 은근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과장일 때에는 임원과의 접촉도 많지 않다 보니 매번 중요한 정보에서 배제된다는 기분이었는데 차장으로서 팀장에 보임되기만 하면 윗선에서만 공유되는 고급 정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김 과장은 며칠 전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내년부터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일환으로 직급 체계를 줄이고 임원 이하 직원 호칭을 전원 ‘매니저’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물론 호칭과는 별도로 내부적인 직급 밴드(Band)와 연봉 체계는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하지만 일단 작년에 들어온 신입사원들과 똑같이 매니저로 불린다고 하니 뭔가 대단히 억울한 기분이 든다.

안 그래도 스펙부터 남다른 데다 위에도 할 말은 하고 사는 젊은 사원들을 보며 종종 위기감을 느껴온 터다. 모두가 매니저인 조직에서 업무를 맡다 보면 자신은 능력 있는 과장/대리급 직원들에게 금방 자리를 내주고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별다른 능력 없이 나이만으로 부장까지 버텨온 선배들도 많은데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김 과장은 답답해졌다.



전통적 승진의 개념이 사라진다?


산업화 이후 현대 기업조직에서 ‘승진’은 ‘보상’과 함께 직원에 대한 통제 및 동기부여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회사는 승진을 통해 직원들의 업무 성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해주면서 성과를 독려해왔다. 직원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 업무에 몰입하면서 자의적·타의적 동기부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승진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점이 왔다. 승진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승진 제도를 필요로 했던 조직구조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구조의 변화에는 크게 3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피라미드형 위계조직에 대한 반성’이다. 빠른 가치사슬의 재편, 파괴적인 진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기존 수직적, 위계적 조직이 가진 대응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최근 많은 대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면서 직급 및 호칭 파괴 등의 뉴스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앞서 제시한 사례 속의 ‘김 과장’ 같은 처지에 놓인 직장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인구 절벽과 고령화 사회 도래로 인해 노령 인력이 그대로 조직에 잔존하는 상황에서 젊은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조직에서 ‘위로의 이동(Moving Up)’을 의미하는 승진의 기회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이미 승진 적체 현상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호봉제 및 승격 개념의 직급 승진제를 폐지하고 직책 중심으로 제도를 개편, 상위 직책 T/O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승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정책들이 모색되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등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긱 이코노미란 그때그때 발생하는 수요에 따라 임시직·비정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단순히 불황 때문에 계약직 근로가 증가한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한 조직에 속해 평생을 헌신하면서 승진을 바라보는 대기업 직장인'이 전형적 모델이었다면 앞으로는 조직에 속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찾아다니는 전문가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유연한 형태의 근로를 영위해 나갈 것이다.


정리해보면, 기업조직들은 이제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 미래 변화에 따른 적응과 생존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가 수평적 조직, 유연한 조직으로의 이동을 꾀하고 있다. 이는 불가피한 변화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래의 수평적 조직에서는 승진이 사라질 것인가? 만약 승진이 사라진다면 직원을 어떠한 유인으로 동기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승진의 형태가 가능한가?


홀라크라시 조직에서 ‘승진’제도의 미래를 보다.


미래 조직이 어떠한 모습을 갖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현재의 거대하고 촘촘한 위계적 피라미드 조직은 궁극적으로 작은 아메바형 기능조직들로 분절된 수평적 조직으로 변할 것이라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수직적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자포스처럼 홀라크라시(Holacracy)를 도입해 극단적으로 수평적인 조직을 실험하는 사례도 있다.

홀라크라시란 1967년 영국의 문학가인 아더 쾌슬러(Arthur Koestler)가 쓴 심리 철학서에서 따온 용어로 조직 차원에서는 관리자 직급을 없애고 조직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과 업무를 수행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홀라크라시는 기본적으로 ‘역할’에 기반을 둔 ‘서클(Circle)’이라는 단위 조직으로 구성된다. 한 구성원은 어느 서클의 리더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서클에서는 팔로워가 될 수도 있다.그렇다면 이러한 홀라크라시 조직에서 승진은 어떤 형태로 이뤄질까?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미국 최대 온라인 신발 쇼핑몰 기업 '자포스(ZAPPOS)'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홀라크라시 개념도 및 조직구조 / 출처 DBR

자포스의 CEO '토니 셰이'는 2015년 3월 모든 직원에게 메일을 발송했다. '이제 상사 없는 직장을 만들 것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면 회사를 떠나도 좋다'라는 내용이었다. 구성원 중 14%가 사직서를 냈다. 대부분은 관리자 급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자포스는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변모한다. 모든 직원은 나이, 성별, 연차에 관계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게 됐다. 직원들은 각 팀으로 발령이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 싶은 부서로 직접 찾아갔다. CEO를 제외하고는 직위가 없으며, 누가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지 조직 내부 및 외부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다. 직원들과 팀은 자신들의 성과를 '스스로' 관리하며 그들의 업무에 책임을 진다.

유쾌한 분위기와 수평적인 기업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자포스' / 출처 자포스인사이트 유튜브

홀라크라시 조직에서는 승진을 할 때‘수직적으로 상위 포지션으로 움직이는 것(Moving Up)’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자포스에는 배지(Badge)라는 개념이 있다. 직원들은 조직 내에서 맡은 역할이 늘어나면 배지를 받게 된다. 업무적인 활동 외에 사내 활동 등 비업무적인 역할에도 배지를 부여해준다. 배지에는 단계가 있고, 이는 연봉과 바로 연계가 되기 때문에 승진 대신 동기부여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자포스는 경쟁기업 대비 시장 평균 이하의 연봉을 지급하고 있으며 보너스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원들이 자포스에 로열티를 갖고 일하며, 해마다 대규모의 인원이 자포스에 지원한다.

자포스 직원들에 따르면, 다양한 비금전적 혜택(의료, 건강 프로그램, 유급 휴가, 지역 쇼핑센터 할인 등)도 이러한 충성도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인이다.또 회사의 10개 핵심 가치에 강력하게 연계돼 있는 투명한 평가 시스템과 개인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체계도 동기부여 수준을 높인 요인이다. 하지만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질 수 있는 자기주도적 조직문화가 가장 큰 충성도 유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런 조직문화가 형성되면서 자포스는 연 매출 10억 달러(1조1200억 원), 재구매율 75%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통적 조직과 홀라크라시 조직에서의 승진 비교 / 출처 DBR


미래 조직, 직급과 승진을 자율과 신뢰로 바꿔라



사실 현실에서 홀라크라시 조직이 기존 조직의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해주는 이상적 시스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홀라크라시 조직의 장점들은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했을 때 발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조직 내 영향력의 불균형 현상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홀라크라시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많이 제기되는 것으로 '지위를 얻고자 승진을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이러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변화의 어려움’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체 조직이 책임과 권한을 골고루 나눠 가지려면 결국 위로부터 그 권한을 내려놓고,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기업이 직급과 승진을 시스템화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직급과 승진제도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통제와 경쟁의 유효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승진 제도는 그러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가 고수해온 조직 운영방식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고 변화에 대해 고민할 때다.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직급이 필요한지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작은 조직이나 직능 단위에 대해 과감히 새로운 조직 구조를 시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직급과 승진’에 의해 스스로 속박된 조직원들에게 ‘자율과 신뢰’의 새로운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깊이 있는 고민과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234호
필자 장은지


필자 약력
-미국 시카고대 MBA
-맥킨지 서울사무소 맥킨지리더십센터장
-이머징 리더십 대표

비즈니스인사이트 문현지 정리
businessinsight@naver.com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