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마키아벨리는 진짜 권모술수의 대가, 악의 교사(敎師)일까

마키아벨리는 진짜 권모술수의 대가, 악의 교사(敎師)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많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로, 악의 교사(敎師)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책을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의 이미지가 얼마나 나쁜지, 영어사전에는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이라는 형용사에 '통치술 전반에서 권모술수를 부리는' 의미가 부여됐을 정도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의 초상 /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2011년, 미국 조간신문 <워싱턴포스트>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마키아벨리의 삶은 전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순진할 정도로 애국적인 인물이었으며 친구들에게 상습적으로 돈을 떼일 정도로 어리숙했다. 어린 친척이 고아가 됐을 때는 자기 식솔도 잘 돌보지 못하면서 그 아이를 입양해서 호구책을 마련해 주었다. 외교를 담당하는 피렌체 제2서기장의 높은 공직에 있으면서도 공금을 아껴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리에서 쫓겨났을 때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심과 공직자로서의 정직함은 내가 가진 가난으로 충분히 증명되고 남음이 있다"고 말했을 만큼 사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전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던 마키아벨리가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친 악의 교사로 세세 영원토록 지탄을 받게 된 것일까?
1550년판 군주론 표지 / 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얼핏 보면 마키아벨리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처세술을 가르친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사람만이 선택되던 피렌체 공화정 정부의 제2서기장으로 일한 데다가 메디치 가문을 위해 <군주론>까지 썼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미 16세기에 마키아벨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만연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키아벨리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은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군주론> 등에서 표현된 마키아벨리의 정치 이론은 권력자들의 눈에 너무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로 몰고 간 것이다. 이는 영국의 희곡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작품 속에 잘 드러난다. 다음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말타섬의 유대인>(1589년)에 표현된 마키아벨리다.

"내 이름은 마키아벨리.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아! 당연히 사람들의 말은 더욱 믿지 않지.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날 제일 존경한다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책에 대한 비난을 퍼붓지.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몰래 내 책을 읽는다네.
내 책을 몰래 읽은 자는 교황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내 책을 던져 버린 자는 경쟁자들이 몰래 탄 독약을 성배처럼 들게 되지."


<말타섬의 유대인>에 등장한 마키아벨리는 장차 그의 이름이 안고 가야 할 불운의 숙명을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풀어서 해석해 보자면, 마키아벨리의 책은 원래 철저한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위해 집필됐다. 그래서 강자들의 눈에 마키아벨리의 책은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천기를 누설하듯이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솔직하게 까발리는 마키아벨리의 지혜와 통찰력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강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책을 몰래 혼자서만 읽고 싶어 했다(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몰래 내 책을 읽는다네). 또, 이 책이 적에게 노출되어서도 안 됐다. 나의 경쟁자가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는다면 나는 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독점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사악함의 대명사로 몰고 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문학자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의 마키아벨리 동상 / 출처 위키피디아
마키아벨리가 권모술수의 대가로 잘못 알려진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쓴 책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책이 가진 진면목은 물론이고 말을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흔히 마키아벨리 하면 <군주론>을 떠올리는데 이 책은 그의 정치사상의 전모를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권모술수로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공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정치 실세로 복권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일자리를 얻기 위한 일종의 '자기 추천서' 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군주론>은 권력 집중을 강조하고 군주의 처세가 극단적이어야 한다고 애써 강조했다. 군주에 의해 권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그 군주는 더 유능한 참모를 거느려야 하고 군주의 통치가 극단적일 때 이를 현명하게 조율할 수 있는 책사(策士)가 필요해진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참모와 책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군주론>의 내용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이런 집필의 일차적 목적을 조심스럽게 분별하면서 <군주론>을 읽어가더라도 곧 두 번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현란할 정도의 인문학적 지식을 집필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다양한 고사(古事)나 인물의 인용은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인문학적 지식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복잡다단했던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세를 헤쳐 갈 군주의 덕목을 파헤치기 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그의 인문학자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당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기도 했지만 예술과 인문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는 과도할 정도로 인문학적 정보를 집필에 활용했다. 상황에 따른 군주의 임기응변적인 리더십을 촉구하던 마키아벨리는 갑자기 고대 그리스나 로마로 돌아가 의미심장한 그리스 신화나 로마 황제의 정치적 판단력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런 인문학적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의 독자들은 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포기하게 되고 결국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읽게 된다. 이런 선택적인 독서 방식은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를 가르쳤다"는 일반적인 선입견과 결합해 <군주론>을 읽고 싶은 대로 읽게 한다. 그러나 <군주론>을 포함한 마키아벨리의 여러 저작들은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일차적인 목적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고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은유적으로 설명돼 있고 고대 로마의 정치가와 철학자들에 의해 펼쳐진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되새기면서 지금의 난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전술론>이란 책에서 고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당신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로마인의 상황에 대해 예를 들어왔는지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거듭 내가 로마인에게서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절실하게 염원해왔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의 이런 고전에 대한 회귀 열망은 현대 독자들에게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글이 인문학 고전을 종횡무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마키아벨리 사상의 전모를 이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 



약자를 위한 마키아벨리

그렇다면 '진짜' 마키아벨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키아벨리는 특유의 대범함을 지녔고 무엇 하나 거칠게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사실 그의 이름이 '권모술수에 능한'이란 악의적인 형용사로 사용된다고 해도 별로 상심하지 않을 인물이다. 그러나 평생을 권력의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약자로 살면서 같은 동료 약자들을 위로했던 그가, 그의 책과 사상이 '강자를 위한 지침서'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대성통곡을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늘 약자였다. 약자들이 그의 동료였다. 권력을 가진 강자들이, 황제의 왕관을 뒤집어쓴 권력의 괴물들이 서로 부와 명예, 영토와 백성을 놓고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을 때 철저한 약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을 그려넣은 작품. 마니피캇의 성모 마리아(Madonna of the Magnificat)-알레산드로 보티첼리(Alessandro Botticelli) /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늘 가난에 쪼들렸으며, 공직에서 해고당할까 두려웠고, 줄을 잘못 서서 공직에서 파면되고, 실업자로 무려 15년 동안 빈둥거리는 삶을 살았던 불쌍한 인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직자로 있었던 피렌체도 위태로운 약체 국가였다. 도시국가로 분열돼 있던 이탈리아는 중앙집권 국가에 강력한 군대를 가진 프랑스의 침공(1494년) 앞에서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폭풍 앞에서 꺼져갈 듯 하늘거리는 촛불처럼 피렌체는 프랑스를 집어삼킬 듯이 다가오는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독일)의 부상을 토끼 눈을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이탈리아 내에서도 피렌체는 자체 군대를 가지지 못하는 최약소국가였다. 피렌체의 외교와 국방을 책임지고 있던 마키아벨리로서는 매 순간 약자의 위기감을 느꼈다. 유럽 정세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피렌체 정치가들의 한심한 작태를 지켜보면서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약자들의 한심한 현실 인식에 혀를 찼다. 

우리가 마키아벨리를 다른 각도에서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와 같은 약자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약체 국가에서 약자로 살아온 마키아벨리는  강자에게 당하지 않고 사는 법을 약자인 우리들에게 은밀히 속삭이고 있다. 

강자는 늘 우리 앞에 있어왔다. 나보다 힘이 센 골목대장부터 늘 노는 것 같은데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철썩 붙는 친구 녀석까지. 나는 수십 통의 면접 원서를 넣어도 연락 한 통 없는데 일류 대기업에 쉽게 취직해서 내 연봉 수준의 추석 보너스를 챙기는 대학 친구. 야근과 주말 근무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요구하는 우리 부장님. 그들이 이 세상의 주인 같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세상의 작은 소모품처럼 느껴진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등수에 들지 못하는 약자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 약자인 우리가 살아야 할 아픔을 알기나 하는지 어느 서울대 교수가, 우리 사회의 잠재적 최강자들만 모아다가 가르치는 강자들의 선생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솔직히 제목으로만 본다면 약자의 아픔은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건 완전히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 시대의 약자들은 짱돌을 들기 전에 마키아벨리의 책을 들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약자의 시선으로 읽어야 한다. 그는 강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조언한 것이 아니라 강자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살고 있는 약자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고 조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의 수호성자이다. 또한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으로 가득한 마키아벨리 사상의 뿌리는 고전과 인문학적 성찰에 깊이 기인한다. 우리가 인문학 공부의 일환으로 마키아벨리 읽기를 시작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를 사회과학과 정치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약자가 지녀야 할 세상을 보는 시각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90호
필자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인터비즈 최예지,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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