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대지진에도 멀쩡했던 후쿠시마 제 2 원전... 비결은 원전 소장의 리더십에 있었다

대지진에도 멀쩡했던 후쿠시마 제 2 원전... 비결은 원전 소장의 리더십에 있었다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폭발하는 화염,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끝없이 치솟는 검회색 연기 기둥, 진득하게 녹아내리는 원자로, 속수무책으로 방사능에 노출되는 사람들....... ‘후쿠시마 원전 참사' 하면 우리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닐까. 완전히 파괴된 후쿠시마 제 1원전 근방은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구역'으로 남아있다.
후쿠시마 제 1원전이 폭발하는 순간 / 출처: flickr
그런데 후쿠시마의 모든 원전이 파괴된 건 아니다. 제 1원전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 2원전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방사능 유출도 없었다. 제 1원전과 무엇이 달랐길래 같은 재해 속에서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을까? 제 2 원전소장 마스다 나오히로(Naohiro Masuda)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이유중 하나였다는 평가다. 마스다와 400명의 제 2원전 직원들은 혼란 속에서 침착하게 대처 방안을 수립해 원전의 붕괴와 폭발을 막았다.
산 너머로 후쿠시마 제 2 원전이 보인다 / 출처: 위키피디아
위기 속 리더십 발휘한 마스다 소장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를 강타한 진도 9.0 지진은 일본 역사상 최고 수준 강진이었다. 그 여파로 발생해 원전을 덮친 쓰나미는 높이만 10m가 넘었다. 제 2 원전이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높이의 세 배에 달했다. 쓰나미를 얻어 맞은 직후, 원전에는 오직 디젤 발전기 한 개와 송전선 하나만이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어지간한 긴급 상황에 준비가 되어 있는 비상대응센터의 전기도 나갔다. 비상대응센터가 정전됐다는 말은 바닷물이 무려 17m 높이 까지 차올랐다는 의미였다. 

마스다는 바닷가를 따라 일렬로 놓인 원자로 4기를 걱정했다. 냉각시스템 일부는 해수면에서 고작 4m 높이에 설치돼 있었고, 원자로는 12m 높이에 설치돼 있었다. 이 시설물들이 강한 파도로 인해 직접적인 손상을 입거나, 혹은 전력공급장치가 고장이라도 나 버렸다면 원자로 냉각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송전선은 각 원자로와 격납용기의 수위, 온도, 압력, 필수 측정값을 관찰할 수 있는 통제실에 전력을 공급해 주었으나, 원자로 네 기 중 세 기의 냉각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한 전력까지 공급할 수는 없었다. 폭발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전력이 없었던 셈이다.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닥치는 모습... 진도 9의 대지진이 불러온 초대형 쓰나미였다
피해 규모를 산정하고 원자로 전력을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마스다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생존 본능을 발휘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먼저임을 알아차렸다. 마스다는 우선 구성원들에게 현재 상황이 어떤지, 작업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알렸다. 엄청난 사고가 났을 때 구성원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부담과 의구심을 공유했다. 더불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또 지속적으로 고쳐나감으로써 모든 팀원들과 이해 수준을 맞추고 급변하는 상황에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마스다와 팀원들은 각각의 문제들과 맞닥뜨릴 때마다 계획을 조정하고 이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함으로써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마스다 리더십을 설명하는 '센스메이킹' 이론

마스다의 리더십은 조직 이론가 칼 와익(Karl Weick) 미시건대 경영학과 석좌교수가 주장한 '센스메이킹(sensemaking-의미화)' 프로세스로 설명된다. 센스메이킹이란 새로운 변화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계속해서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먼저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문제의 불편성을 빠르고 강력하게 인지시킨 뒤, 그 불편함을 유발하는 현상들을 하나로 그룹화해서 따로 분리한다. 분리된 개념을 통해 과거 발생한 문제들을 돌아보고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을 거친 조직원들은 현상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자발적인 행동 변화를 낳는다. 행동의 변화는 또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 

센스메이킹은 이해와 경험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적응 행동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기대 속에 살며 익숙함에 집착한다. 갑자기 닥쳐온 위기는 그런 익숙함을 무너뜨린다. 과거 경험이 현재 상태를 설명하지 못할 때, 우리는 사건에 대한 해석과 대응방법을 수정해야 한다. 변화된 행동과 그에 따르는 성찰을 통해 우리는 불확실한 현실을 조금씩 규명할 수 있다. 와익은 이 현상을 ‘설정(enactment)’이라 불렀다.
 
설정은 1차원적 프로세스가 아니다. 위기에 처하면 해결책을 찾기 전에 과감히 잘못된 경로들을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리더가 이러한 경로들을 찾는 작업의 진행을 공개하면 할수록 상황을 더 새롭고 더 바람직하게 이해하기는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사건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갇히지 않으면서 센스메이킹을 시도하는 방법은 많이 연구돼 왔다. 마스다는 네 기의 원자로 냉각 운전정지를 실행시킬 때 바로 이런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했다.



위급 상황에 무작정 '지시' 하기보다 직원들을 '이해'시키려 하다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했을 때 마스다는 네 기 중 세 기의 원자로에서 냉각 기능이 소실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일반적인 위기 상황에서 원전 가동을 중지하면 열은 냉각 장치에 의해 배출되고 바닷물에 흡수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이 때는 강한 쓰나미 탓인지 원전이 중지됐음에도 불구하고 노심(core) 내부 연료봉들이 열을 계속 발생시켰다. 직원들은 노심의 열을 낮추기 위해 각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직접 투입했다. 마스다는 노심이 파괴되지는 않더라도 증기 압력의 증가로 인해 격납용기(containment vessels) 자체가 기능을 못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만일 상황이 악화돼 용기가 파괴되면 방사능 누출을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반드시 원자로가 어떤 상태인지 현장 점검을 해야 했다.
 
목숨이 오가는 통에 아무도 위험한 현장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연히 어떤 부분이 얼마만큼 피해를 입었는지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 직원들은 마스다의 지시에 따라 비상대응센터로 대피한 상황이었다. 마스다는 그의 팀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피해 상황을 조사하도록 설득해내야 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직원들은 원전 인근에 살고 있던 가족들 걱정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거기에 대다수는 이미 자신들이 받았던 훈련과 경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서 작업하는 통이었다. 쓰나미로 인한 해수는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유입됐고 지진 이후 반복적으로 이어진 여진 강도만 해도 어지간한 대지진 규모인 진도 7.0 이상이었다.
후쿠시마 1원전 대지진 전과 후 / 출처: 동아일보
마스다는 당시 상황을 돌이켜 “내가 요청한다고 해도 우리 팀이 현장에 가려고 할지, 그곳에 사람들을 파견하는 것이 안전한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라고 회고한다. 시간이 없었다. 만약 냉각 시스템을 복구하지 못한다면 원자로 격납 용기가 위태로워져 방사능이 유출되고,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해결을 위해서는 즉시 움직여야 했다.
 
마스다는 급한 마음을 내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혼잡한 비상대응센터 구석에 화이트보드를 놓고 여진 빈도와 규모를 천천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진에 대한 각각의 선을 표시하면서 위험감소를 나타내는 간단한 차트를 만들었다. 감동적인 연설이나 명령은 자제했다. 그는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직원들 스스로가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맞설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보고 직접 현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행동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오후 10시, 팀 리더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마스다는 각각의 원자로를 담당하도록 10명으로 구성된 4개의 조직을 구성해 현장 점검을 요청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거부하지 않았다.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도 빠르게 행동을 변화시켜 대처하다

수 십년 간 이 원전에서 근무하며 구석구석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마스다는 각 그룹에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작업자들이 떠나기 전, 그는 불안과 공포가 기억력에 미칠 영향을 염려해 지시사항을 다시 한번 그에게 반복해 말하도록 시키기까지 했다.
 
그의 지시를 따라 네 개 팀이 모두 현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여전히 작동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상세히 파악해 새벽 2시에 비상대응센터로 안전히 복귀했다. 그 때부터 아침까지 마스다는 작업 우선순위와 작업들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보급품 리스트를 밤새 작성했다. 물론 그가 구한 물품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대신 침착하게 도쿄전력 본사와 일본 자위대에 지원을 요청해 추가 보급품들과 케이블을 외부에서 조달했다. 냉각시스템의 손상된 부품들을 아직 동력원이 남아 있는 건물로 연결시키는 케이블은 하나만 해도 길이가 200m에 무게는 1톤이나 됐다. 직원들은 가동이 멈춘 세 개의 원자로를 연결하기 위해 그 케이블을 9㎞ 이상 설치해야 했다. 직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4시간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20명이 중장비를 사용해 한 달 이상 걸려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마스다는 화이트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부하 직원들이 직접 원전의 전반적인 그림과 개괄적인 복구 전략을 화이트보드에 작성하도록 했다. 정보가 생길 때마다 화이트보드로 직원들과 공유했다. 화이트보드에 적어 놓은 계획은 이후에도 계속 수정됐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팀원들은 진행과정에 여러 번의 계획 수정을 거치면서 그들 스스로 헤쳐나갔다. 화이트보드를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여러 차례 조정해나갔다.
 
이 와중에 제2원전은 새로운 위험에 직면했다. 제1원전 폭발로 인해 인근 원전에서의 방사능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 만약 방사능 오염구역이 남쪽으로 더 이동한다면 제2원전 직원들까지 위태로울 수 밖에 없었다. 3월13일 저녁, 제1원전에서 노심용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방사능 수치는 훨씬 높아졌다.
2011년 3월 원자로가 폭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 출처: 동아일보
포기하고 탈출을 해야 할 지도 모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마스다는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작업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날 밤 엔지니어들은 원자로들에 전원이 공급돼야 하는 순서를 신중하게 계산했다. 처음에는 압력이 가장 크게 증가하는 신호를 보이는 2호기에 최우선 순위가 부여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엔지니어들은 1호기에서 압력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마스다가 보고를 들었을 때는 이미 직원 100명이 1톤 짜리 케이블을 들고 2호기로 이동시키는 중에 있었다. 

현장 상황 때문에 케이블을 즉시 재배치하기는 불가능했다. 마스다는 나중에야 그의 지시가 현장 직원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시를 듣자 마자 곧바로 방향전환을 실행했다. 겨우 2일 전만 해도 마스다는 한 방을 가득 채운 겁에 질린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여진 빈도를 기록하며 동참을 유도해야 했지만, 이제는 일심동체가 된 그들을 금방 금방 납득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마스다는 조용히 직원들에게 불확실성을 전달했고, 직원들은 스스로 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센스메이킹이 성공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3월13일 자정이 되기 바로 전, 직원들은 현장을 통과하는 9㎞가 넘는 케이블을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3월14일 새벽 1시24분, 1호기가 최대 압력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 시간의 2시간 전 냉각장치가 켜졌다. 아침 7시13분에는 2호기의 냉각장치가 켜졌고, 오후 3시42분 4호기의 냉각시스템이 정상 작동됐다. 3월15일 아침에 이르러서는 제2원전 원자로 4기 모두 냉각운전장치 작동에 성공했다. 그 시간 제대로 된 대처가 없었던 제1원전은 3번째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1원전은 왜? 악조건이기도 했지만 리더십 부재가 초기 대응 실패 불러


제2원전은 지진, 쓰나미, 침수, 전력 손실, 격납용기 안정성의 위협, 전력 복구과정에서의 우선순위 변경과 같은 혼란을 잇따라 겪었다. 하지만 마스다와 그의 팀은 계속해서 생생한 설명과 계획을 취합하고, 또 상황 변동에 따라 수정해 나가며 위기에 유동적으로 대처했다.

물론 제2원전은 1원전에 비해 사정이 어느 정도 나았다. 2원전은 미량의 전력이라도 있었으나, 제1원전은 외부로부터 전력 조달이 끊기고 비상 디젤발전기조차 소실됐다. 통제실이 어두워지면서 근로자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시설 손상과 전력 공급 중단은 폭발의 주원인이 됐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1원전에서도 원전소장의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발휘됐다면 최악의 사태까지는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인식도 있다. 1원전은 쓰나미 직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제 1원전 소장 요시다 마사오 씨 / 출처: 동아일보
2014년 공개된 후쿠시마 제 1원전 소장 요시다 마사오(1955~2013)의 '요시다 조서'에 따르면, 쓰나미 직후 요시다와 1원전 직원들은 비상용복수기(IC, 비상시 작동되는 냉각장치)의 기능 저하를 이미 보고 받았다. IC의 기능이 저하됐다는 것은 곧 냉각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뜻했다. 그런데 당시 IC를 오랜 기간 다뤄본 사람이 원전 내에 한 명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긴급대책실에 연락해 펌프로 물을 보충할 것을 최우선적으로 지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요시다는 중앙제어실 운전원에게 '원자로에 주수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이다. 오후 10시가 되어 원자로 건물 방사선량이 상승한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야 급히 물 보충 지시를 내렸으나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연기가 치솟고 있는 후쿠시마 제 1 원전. 2011년 3월 16일 촬영 / 출처: 위키피디아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는 요시다의 초창기 대응 실패를 원전 피해 확대의 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원전 직원들이 어쩔 줄 모르고 헤매는 사이 오후 6시 1호기 노심이 손상됐고, 8시부터는 이미 노심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시작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니 원자로 격납용기는 붕괴됐고, 직원들은 엄청난 양의 방사선에 노출됐다. 요시다 본인도 2013년 58세의 나이에 식도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방사능 피폭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의심한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건 일장 연설이나 공수표가 아닌, 정보 공유와 신뢰


마스다는 달랐다. 그와 그의 팀 역시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난제들을 맞닥뜨렸다. 한 순간만이라도 판단을 잘못했거나, 리더십이 약해 팀이 와해 됐다면, 겁을 먹고 현장 점검을 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면 피해는 어마어마하게 더 커질 수 있었다.

마스다는 물론 불확실한 위기 속 리더로서 팀원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러나 전면적인 연설이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지 않았다. 그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는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을 신뢰하도록 했고, 또 스스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몸소 이해하도록 했다. 그 결과 마스다와 400명의 직원들은 위기 속에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올바른 리더십의 좋은 사례로 이 사건이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후 마스다는 엄청난 주목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2014년 4월에는 제1원전의 해체 책임자로 선임됐다. 그리고 지금, 그는 동경전력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현 동경전력(TEPCO) 마스다 나오히로(增田尙宏) 부사장(우) / 출처: 동경전력 공식 페이스북
*제 2 원전은 큰 피해가 없었기에 대지진 이후에도 원자로 상온정지상태로 재운용을 대기하고 있었으나,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 여론에 올해 9월 폐로가 결정됐다.

출처 세계적 경영 저널 HBR 2014년 7-8월호
필자 란제이 굴라티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 찰스 카스토 원자력규제위원회 후쿠시마 재난 담당, 샬럿 크론티리스 연구원 겸 작가



인터비즈 권성한,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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