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관리직원이 대표에게 \"한번 봐. 어떤 게 좋겠어?\" 반말하는 회사

직원이 대표에게 "한번 봐. 어떤 게 좋겠어?" 반말하는 회사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업체 라프텔의 김범준 대표(오른쪽)와 직원들이 모니터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DB
“라피, 여기 와서 한번 봐. 어떤 게 좋겠어?” “두 번째 걸로 해보자!”

12일 찾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업체 ‘라프텔’ 사무실. 여느 소규모 정보기술(IT) 스타트업처럼 파티션 하나 없이 툭 트인 공간에서 13명의 직원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특이한 건 ‘…요’ ‘…니까’ 같은 어미의 존댓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2014년 창업 때부터 모든 직원이 ‘반말’을 쓰고, 서로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부른다. 라프텔 구성원 중 가장 어린 직원과 최고 연장자는 17세 차가 난다. ‘라피’는 김범준 라프텔 대표(32)의 닉네임이다.

일부 스타트업들이 이처럼 직원끼리 서로 반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파격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어의 존댓말-반말에서 나오는 수직적 질서를 완전히 깨뜨려 보기 위한 실험이다. 수평적 소통을 장려하기 위해 직급을 빼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거나, 아예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명하게 하는 방식은 대기업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세이클럽, B612 등 유명 IT서비스를 개발해 ‘슈퍼 개발자’로 불리는 남세동 대표가 세운 딥러닝 기업 ‘보이저엑스’도 11월 한 달간 모든 임직원이 서로 반말을 쓰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블록체인 스타트업 ‘디넥스트’는 올 1월 창립 때부터,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업체 ‘텀블벅’도 2015년부터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

왜 상호 존댓말이 아닌 반말일까. 김 대표는 “존댓말의 경우 ‘상급자가 하급자를 배려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데다 같은 존댓말이라도 상대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다”며 “반말은 높낮이가 아예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가령 ‘밥 먹었어요?’와 ‘식사하셨습니까?’ 같은 차이가 반말에선 없다는 것이다.

기업마다 각기 “장단점이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윤재 디넥스트 대표는 “생각은 존댓말로 하지 않기 때문에, 존댓말을 할 때는 일종의 ‘필터링’을 거칠 수밖에 없다”며 “반말을 하면 이런 과정이 생략돼 보다 생생한 표현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존댓말로는 어려운, ‘왜?’ 같은 반문이 자연스러워져 풍부한 소통이 오가면서 창의성을 더 이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조직문화를 갖출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존댓말이 사라지면서 필연적으로 말의 차이에서 오는 ‘위계’에 의한 존중도 없어져 상대를 실력으로 평가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내용을 말할 수 있는 ‘경제성’도 반말의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토론 문화가 활성화되는 반대급부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필수적인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에 약점이 생긴다”며 “서로를 편하게 여기다 보면 업무를 쉽게 미루는 등의 폐단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말을 넘어 서로 간에 자칫 무례를 범하거나, 동료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 위험도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역할과 책임을 분배하는 관리자의 능력이 더 많이 요구되고, 반말이 무례나 태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채용 때부터 업무 자세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내부 구성원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염 대표는 “도입 초기에 어린 직원으로부터 적나라한 피드백을 받은 다른 직원이 ‘일곱 살 어린데 너무 심한 것 아니냐. 못 다니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며 “다른 기업의 인재를 스카우트할 때 반말 문화 때문에 못 오겠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몸집이 작은 스타트업에서만 가능한 실험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신선한 실험임에는 틀림없지만 직장 외에도 학교 등으로 상하관계가 얽혀 있고, 부모 자식뻘 나이 차가 나는 경우가 많은 대규모 조직에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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