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관리해고된 CEO 위해 시위에 나선 임직원과 시민들...대체 왜?

해고된 CEO 위해 시위에 나선 임직원과 시민들...대체 왜?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사태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행태 및 각종 비리 관련 의혹은 아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제외하고 2018년 상반기 대한민국을 달군 가장 큰 뉴스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각종 비행(非行)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누가 뭐래도 그 회사 직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2018년 5월4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근절을 위한 제1차 광화문 촛불집회' /출처 동아일보
4년 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현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점에선 비슷한 면이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너무나도 다르긴 하지만. 바로 디물러스슈퍼마켓(DeMoulas Super Markets, Inc.)이라는 가족경영회사가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 체인 마켓바스켓(Market Basket) 임직원들의 시위운동이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 슈퍼마켓 체인 '마켓바스켓'/출처 마켓바스켓 공식 홈페이지
2014년 여름, 마켓바스켓 직원들은 대대적인 파업에 들어갔다. 점원들은 매장에서 물건을 정리하거나 계산대에 서는 대신 주차장에 모여 시위 팻말을 들었다. 물류센터 직원들은 슈퍼마켓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물류센터를 폐쇄했다. 직급과 직종을 막론하고 마켓바스켓 전·현직 임직원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급기야 이들은 납품업체와 고객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냈다. 공급업체들은 마켓바스켓에 납품을 중단했고,지역주민들은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사촌동생(아서 S. 디물러스)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패해 해고당한 전 최고경영자(CEO) 아서 T. 디물러스의 복귀였다. 
마켓바스켓 로고가 찍힌 셔츠를 입고 아서 T. 디물러스의 경영 복귀를 촉구하는 시민들
마켓바스켓의 대규모 시위는 회사 대주주인 아서 T. 디물러스와 아서 S. 디물러스 간 서로 다른 경영철학이 빚어낸 대립에서 촉발됐다. 2008년부터 디물러스슈퍼마켓의 CEO를 맡았던 아서 T. 디물러스는 고객과 직원,납품업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기업문화와 비즈니스모델 설계가 경영자의 책무라고 믿었다. 그는 직원과 이익을 공유하고, 고객에겐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며, 납품업체들과도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마켓바스켓을 운영했고, 해마다 연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사촌동생인 아서 S.디물러스는 이런 방침이 경영자의 최우선책임인 주주이익 극대화에 반한다며 그를 회사에서 내쫓았다.
아서 T. 디물러스(좌)와 아서 S. 디물러스(우)
마켓바스켓 임직원들은 해고된 CEO의 경영 복귀를 위해 스스로 회사를 파산위기로 몰아갔다. 심지어 마켓바스켓의 충성스러운 고객들은 사비를 털어 “아서 T. 디물러스가 복귀하기 전까지 불매운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신문광고까지 내면서 새로운 경영진과 이사회를 압박했다. 모든 언론이 유례없는 시위에 주목했고, 급기야 정치권까지 중재에 나섰다. 연간 매출액 45억 달러, 고용인원 2만5000명에 달하는 슈퍼마켓체인이 문을 닫게 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결국 임직원과 납품업체,고객 등 지역사회 전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아서 T. 디물러스는 6주 만에 개선장군처럼 귀환했다. 파업기간 중 마켓바스켓의 매출액은 90% 이상 감소했지만, 그가 CEO로 복귀한 후 회사 실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정상화됐다.
마켓바스켓 시위 기간 중 텅빈 매대 및 매장 모습
마켓바스켓 사례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리더, 의미 있는 직장이 직원들에게 얼마나 큰 동기를 부여하며 그들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 목사는 진정으로 선하고 가치 있는 목적에 대해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It's not about me)”라는 한마디 말로 설명한다. 이를 개인이 아닌 기업으로 확대해 적용하면, 주주가치 극대화를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기업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마켓바스켓이 바로 그런 예다. 이런 목적은 기업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지역사회 모든 구성원들을 연대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서 T. 디물러스의 경영 복귀를 촉구하며 불매운동을 벌인 시민들
아서 T. 디물러스는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넘어 ‘가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 경영자였다. 그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생일, 결혼, 장례 등 크고 작은 경조사까지 일일이 챙겼다.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했고, 비용 절감을 위해 무인계산대를 도입하기보다는 ‘사람은 사람이 서비스해야 한다’는 철학에 입각해 점원들이 2인 1조로 직접 손님들을 응대하게 하는 영업방식을 고수했다. 이 모든 것은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아서 T. 디물러스(좌)
아서 T. 디물러스의 이 같은 진정성은 2014년 마켓바스켓 시위 당시 직원들로 하여금 ‘친척은 혈연으로 엮이지만 가족을 만드는 건 의리(Blood makes you related, but loyalty makes you family)’라는 팻말을 들게 만들었다. 피붙이인 사촌과의 분쟁으로 상처 입은 리더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남들이 전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와 지지가 아닐까 싶다. 혈연을 뛰어넘어 가족의 개념을 확장시킨 이 문구엔 마켓바스켓의 기업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문화는 조직원들을 기업이 마땅히 돌봐야 할 가족으로 여긴 아서 T. 디물러스의 한결같은 노력과 헌신에서 비롯됐다. 조직과 개인이 한데 힘을 합쳐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한 사람의 리더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미표기 이미지 출처: Arthur T. Demoulas Support 페이스북 홈페이지
출처 세계적 경영 저널 HBR 2018년 7-8월호 합본호
필자 이방실


* 필자 약력
- 서울대 영어교육과 학·석사, 미국 듀크대 MBA, 서울대 공학박사(기술경영)
- 한국경제신문 기자, 올리버와이만 어소시에이트, 동아일보 기자
- 저서 <머크 웨이(공저)>, <빅프라핏(공저)>. 역서 <탭(TAP)>.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