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불황일 때 투자 더”…세 번의 위기 ‘초격차 전략’으로 돌파

“불황일 때 투자 더”…세 번의 위기 ‘초격차 전략’으로 돌파

《‘호황이 길면 불황도 깊다.’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반도체 업계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정설이다. 올해 사상 최대 수출 신기록 겹경사를 세운 국내 반도체 업계가 1년 내내 ‘고점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 첫발을 들인 1968년 이후 3번의 위기를 극복해냈듯이 이번에도 투자 확대와 신기술 확보라는 ‘위기 극복 공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앞으로 또 위기가 온다면 과거 ‘치킨게임’과는 다른 양상일 것”이라며 “먼저 시장을 만들어내는 쪽이 이기는 창의력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창의력 있는 인재를 반도체 분야에서 키워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세 번의 위기 극복한 한국 반도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첫 위기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직후인 1985년 찾아왔다. 1983년 11월 삼성전자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미국과 일본의 가격덤핑이 시작됐다. 
1984년 말 3.5달러(약 3964원)이던 D램의 개당 가격은 불과 6개월 만에 개당 30센트로 폭락했다. 국내 D램 업체들의 적자가 크게 늘자 삼성과 현대가 반도체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누적적자가 1400억 원을 넘어서던 1987년 8월 세 번째 반도체 라인 착공을 강행했다. 경기는 풀리면 기회가 다시 올 것이고 실기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삼성전자는 까다롭기로 소문났던 미국 IBM의 256K D램 품질검사를 통과했고 그해 말 경기가 급반전하면서 주요 전자업체마다 삼성 제품을 앞다퉈 찾았다. 
1994년 첫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던 국내 반도체 업계에 2001∼2002년 글로벌 공급 과잉 문제가 불거지면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외환위기로 1999년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했지만 업황 악화로 유동성 위기가 왔다. 

2001년 3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하이닉스반도체는 7개월 만인 그해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 사상 최악의 불황 속에 15조 원이 넘는 부채를 떠안고 외국 기업에 매각될 뻔하기도 했지만 노사가 힘을 합쳤다. 임직원들이 나서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했다. 투자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자 노사가 함께 구형 장비를 개조해 신형 장비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는 ‘블루칩 프로젝트’를 펼쳤다. ‘하이닉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까지 듣던 회사는 2004년 2월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성공하며 기사회생했다.
반도체 산업의 세 번째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쳐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찾아왔다. ‘수요절벽’에 맞닥뜨린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도 급감했다. 1994년 이후 줄곧 10.0% 안팎을 차지하던 반도체의 한국 전체 수출 기여도는 7.8%까지 떨어졌다. 1992년 이후 내리 수출 품목 1위를 차지하던 반도체는 2008년 조선업 등에 밀려 5위까지 떨어졌다.

한국 기업들만의 위기는 아니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독일 키몬다가 2009년 결국 파산했고 2011년에는 당시 세계 3위 업체였던 일본 엘피다가 1100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다 결국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되던 시기다.

불황일 때 투자를 더 늘린다는 한국 반도체 사업의 DNA는 2008년에도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그해 7월 화성캠퍼스 메모리 생산라인에 1조 원을 추가 투자했다. 당시만 해도 업계에서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차세대 반도체 제품의 시장 가격이 높아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삼성전자는 128GB와 256GB SSD를 연이어 개발해 내놨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스마트폰과 MP3플레이어 등 휴대용 전자기기 시장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메모리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2010년 이후 SSD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최고 효자 제품 중 하나로 올라섰다. 

○ 고점 논란도 기술력으로 극복

최근 불거진 반도체 고점 논란도 비슷한 모양새로 이어지고 있다. 서버 및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2016년 말부터 이어져 온 이른바 ‘슈퍼 사이클’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요는 분명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과거처럼 업황이 급격하게 추락해 불황과 위기까지 불러올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 과거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가 3개 이하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급격한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 폭락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11월에도 미국 모건스탠리는 “D램과 낸드플래시 사업이 공급 증가로 정점에 다다랐다”고 분석하며 반도체 고점 논란을 제기했지만 역설적으로 올 한 해 메모리시장은 역대 최고 호황을 맞이했다.

당분간 지속될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에 더해 4차 산업혁명을 맞아 5G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등 시장을 견인할 새로운 수요가 적지 않다는 점도 긍정적 전망을 이끌어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최한 ‘삼성 테크 데이 2018’에서 미주 지역총괄 최주선 부사장이 개회사를 하고있다. 출처=삼성전자뉴스룸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18’에서 120단 6세대 V낸드기술과 3차원(3D) 적층기술을 활용한 서버용 D램 모듈 및 첨단 EUV 기술을 적용한 7나노 공정 등을 공개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달 초 충북 청주시에 20조 원을 들여 신규 반도체 공장 ‘M15’를 준공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지금 같은 흐름에선 새 시장이 열리길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열어가는 공격적 전략이 필요하다”며 “삼성전자가 전에 없던 SSD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냈듯 앞선 기술개발과 마케팅 전략으로 시장의 성장을 앞당겨야 한다”고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황태호 기자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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