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계란껍질 위 숫자엔 무슨 사연이? 규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기술 기업이 되려면

계란껍질 위 숫자엔 무슨 사연이? 규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기술 기업이 되려면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최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한 스타트업들이 기존 법 제도와 충돌하며 문제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규제는 보통 기업의 위협요인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규제와 기술 혁신의 관계는 단편적이지도, 일방적이지도 않다. 

그렇기에 꼭 기업이 수동적 역할만 할 필요는 없다. 기업은 표준화를 통해 규제 형성을 주도할 수 있다. 또한 규제를 효율적으로 준수하고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규제를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보다 규제를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접근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규제는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켜왔나?

통상적으로 규제는 새로운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규제가 기업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경우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규제를 형성하기도 한다. 식중독을 유발하는 살모넬라균에 대한 영국과 EU의 규제가 그렇다.

1990년대 말 달걀에 대한 식품 규제는 연속형 잉크젯(continuous ink-jet) 기술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1998년 영국 정부는 영국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달걀이 살모넬라균에 감염돼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달걀 소비가 한때 60% 가까이 감소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영국 정부의 계란 품질 보증마크 (왼쪽) / 추적정보가 표시된 계란과 산업용 잉크젯 프린터 (가운데, 오른쪽) (출처 egginfo.co.uk, DBR)
영국 정부는 소비자들이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지 않은 계란을 쉽게 식별하도록 하기 위해 양계 농가에 'Lion Quality Code of Practice(영국 정부의 계란 품질 보증마크 제도)'를 도입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이 조치를 전 회원국에 확대 적용해 모든 회원국이 모든 달걀의 상태를 표면에 표시하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모든 양계 업체는 달걀 생산 방법, 원산지, 양계장 식별코드, 유통기한(best by date)을 의무적으로 달걀 표면에 표시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규제는 산업용 잉크젯 프린터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또 하나의 사례로 환경에 대한 규제가 탄소포집 기술 같은 친환경 기술의 개발을 촉진하기도 했다.
 현재 이산화탄소(CO2)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68%를 차지하는데 지금의 온난화 대응 방식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저감'에서 한발 나아가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자원화하는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 산업 설비 또는 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상업성 있는 유용한 제품으로 전환하는 기술)'은 원자력, 재생에너지와 함께 온실가스 3개 저감기술로 꼽히며 주목받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 기술의 패러다임이 '탄소 제로'에서 '마이너스 탄소'로 바뀐 것이다.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생산한 벽돌 (출처 solidia Technologies)
포집된 CO2는 다양하게 가공될 수 있다. 변환하지 않고 압축된 가스 그대로 제조업 분야에서 사용하거나, 다양한 화학적 처리를 통해 건설자재나 연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직 실용화를 검증하고 있는 단계의 기술이긴 하지만 탄소 성분을 가공해 생산할 수 있는 분야라면 폭넓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전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규제에 발전적으로 대응하는 세 가지 방안

1) 기술 표준화(Standardization)
표준화는 특정 기술에 대한 기준이나 규격을 만들어서 호환성을 높이는 행위다. 과거 기업들의 혁신 역량이 부족했을 때는 주로 질 낮은 제품이나 서비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보증하는 국가표준마크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예가 공산품 규격인 'KS 인증'이다.
1970~80년대 비디오 표준을 놓고 경쟁했던 JVC사의 VHS(왼쪽)와 소니의 베타맥스 (오른쪽) (출처 위키피디아)
반면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 출현할 때는 민간기업들이 주도한다. 기술이나 시스템에 대한 규범이나 요구사항을 표준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기술 표준은 규모의 경제를 더 강화시키고 가격을 떨어뜨리는 등 소비자 편익 증진에 크게 기여한다. 과거 IBM은 PC 표준을 주도해 PC 제조업체가 IBM과 호환 가능한 부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PC가 가정마다 보급되는 데 기여했다. VHS 비디오테이프나 블루레이, 4G 경우 역시 민간 기업들이 함께 컨소시엄을 만들어 표준 기술을 주도한 경우다.

이 같은 표준화의 순기능은 4차 산업혁명처럼 기술적 불확실성이 높을 때 효과가 더 크다. 독일 베를린공대의 블린트(Blind) 교수의 최근 연구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클 경우 정부규제가 기업의 기술 혁신 효율성을 낮추는 반면 표준화는 이를 높일 수 있음을 보였다. 특히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처럼 새로운 기술의 시장성이 아직 확실치 않을 경우 법이나 제도는 새로운 기술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경우 정부 규제가 시장 상황을 왜곡하고 기술 혁신에 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키는 역효과가 유발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표준화를 주도할 경우 시장의 니즈를 적기에 읽고 대응할 수 있다. 또한 많은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기술 개발에 필요한 위험 비용을 분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공급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기업들이 참여하는 자율주행시스템 기술포럼이 대표적인 예다.

2) 레그테크(RegTech) 
'레그테크'란 규제를 의미하는 ‘Regulation’과 기술을 의미하는 ‘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 당국의 법률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거나 기업 스스로 준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사실 레그테크는 핀테크의 발달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강화된 금융 관련 법률규제로 생긴 자연스러운 부산물에 가깝다. 쉽게 생각하면 점점 늘어나는 안전 관련 규제에 빅데이터,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이 대응하도록 한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 예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Fraud Detection System)은 합법적으로 수집한 고객의 평소 거래데이터로부터 전자금융 사기로 판단되는 거래 패턴을 사전에 걸러내어 차단한다.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탐지율이 98%를 넘어섰다. 유사한 사례로 자금세탁방지시스템(AML, Anti-Money Laundering System)이 있는데 가상화폐, 크라우드 펀딩의 활성화로 인해 복잡해진 불법 자금 흐름을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사전에 탐지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레그테크의 활용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딜로이트는 유럽과 미주 지역을 선도하는 레그테크 서비스 업체 트렌드를 연구하면서 새로운 컨설팅 방법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KMPG도 SAS그룹과 함께 내부 인력만으로 대응하기 힘든 빠른 규제 변화에 대한 디지털 기반 대응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3) 이노베이션 딜(Innovation Deal)
최근 카풀 사업을 놓고 벌어진 논쟁처럼 보통 현행 규제는 택시회사나 숙박업체 같은 기존 이해관계자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더라도 제품/서비스로 혜택을 받는 고객군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경우나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기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규제 이슈는 이해관계자 집단 간 첨예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유럽연합은 규제 도입 과정에서 이러한 갈등 조정의 중요성에 주목해 '이노베이션 딜'이라고 하는 실험적 자율적 규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새로운 기술로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규제 이슈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조정 과정이며,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핵심이다. 현재 네덜란드가 녹색성장 정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EU 차원에서 시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인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재활용’ 프로젝트의 경우 전기자동차가 보편화될 가까운 미래에 중금속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배터리 재활용이 큰 이슈가 될 수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다. 프로젝트에는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네덜란드의 IT 및 재생에너지 기업인 'LomboXnet', 에너지 회사인 'Bouygues', 프랑스 환경부와 산업부, 네덜란드 환경부와 경제부 등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규제와 배터리 재사용에 관한 규제를 함께 선제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취지를 지키기 위함이다.


앞으로 규제의 발전 방향은?

기술발전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기술 간 융복합이 가속화하면서 규제와 기술 혁신의 충돌이 더 잦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최근 네거티브 입법이나 규제 샌드박스 같은 공급자 중심의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변화를 신속하게 법·제도에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기업이 규제에 대응하는 전략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적극적으로 기술 표준을 주도함으로써 빠른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며,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해 규제 대응 역량을 키우는 레그테크 등의 기술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민간주도의 논의의 장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민원성으로 제기되는 소소한 사안들을 검토하기보다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큰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관 협력체계의 도입과 안착이 필요하다.


* 이 글은 DBR 2018년 10월 호 <규제 이겨내려면, 규제보다 앞서가라>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58호
필자 안준모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비즈 오종택,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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