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미국 유통업의 상징 \

미국 유통업의 상징 '시어스' 파산 신청...대중소비사회 문 연 공룡 어떻게 무너졌나

125년 전통의 미국 백화점 체인 시어스(Sears)가 자금난 끝에 파산을 신청(15일 현지시간)했다. 뉴욕 파산법원에 제출한 파산 신청서에 명시된 시어스의 부채는 113억 달러(12조 8000억 원)에 이른다. 2011년부터 7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한 결과다. 15일로 예정됐던 1억3400만 달러(약 1500억 원) 규모 부채 상환일에 백기를 드는 쪽을 택했다.
시어스 로고/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번 시어스 파산 신청을 두고, 국내외 주요 언론은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머스로 유통 패권이 넘어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해석을 달았다. 시어스는 어떤 회사이고 어쩌다가 몰락한 것일까. 


우편 판매를 통한 유통 혁신의 상징...한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보유

미국 유통업을 상징하는 시어스는 한 역무원의 부업에서 시작됐다. 1886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리처드 워런 시어스는 평소 알고 지내던 상인 앞으로 판매용 회중시계 한 상자가 잘못 배달된 사실을 알게 됐다. 시어스는 처치곤란 시계를 대신 구입해서 직장 동료들에게 팔아주었는데 이때 장사에 묘미를 느껴 아예 시계 상점을 차렸다. 이후 시어스는 시카고로 가게 자리를 옮기고 시계수리공 알바 로벅과 함께 동업을 시작(1893년)했다. 이게 바로 백화점 시어스의 모태다.  
리처드 시어스(왼쪽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오른쪽 사진은 1905년 발행된 시어스 카탈로그 책자 안내문. 출처 플리커
역무원이었던 시어스는 당시로선 독특한 아이디어로 물건을 팔았다. 바로 판매 상품 정보가 실린 카탈로그를 무상으로 배포하고, 주문을 받아 물건을 배송하는 시스템이었다. 시어스는 중서부 넓은 평원의 외딴 마을 농부들이 물건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당시만 해도 시골에 있는 농민들은 제대로 된 상품 가격을 몰라 바가지를 쓰기 일쑤였다)을 보고 카탈로그 판매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어스는 주문이 들어오면 철도와 우체국을 이용해 무료로 배송했다. 덕분에 획기적으로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었고, 주문은 폭발했다. 시어스의 판매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큰 상점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까지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시어스의 ‘카탈로그 쇼핑’ 방식이 미국 시장의 소비 평준화를 이끌어낸 동시에 홈쇼핑의 기원이 된 셈이다. 쇼핑 카탈로그는 1000쪽에 달했는데, 판매 품목은 장난감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방대했다. 

1920년대 들어 자동차 보급이 빨라지고, 통신판매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시어스는 소매 매장을 직접 차리기 시작했다. 앞선 세대에서 전화, 철도의 발전을 활용한 시어스는 이번엔 중산층의 도심 집중이라는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낸 것이다. 
1940~60년대 시어스의 카탈로그북 이미지. 출처 플리커
197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을 당시 미국 전역에 3500개 점포를 운영했다. 미국 인구 4명 중 3명이 시어스에서 쇼핑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다. 1973년엔 시카고에 높이 527m에 이르는 시어스 타워를 세웠다. 1998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페트로나스 타워가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시어스는 1973년 세계 최고층 빌딩을 세웠으나 1993년 이를 매각했다. 2009년 윌리스 그룹이 이 건물에 입주한 이래로 '윌리스 타워'로 불리고 있다. 출처 플리커
월마트와 아마존의 약진...연이은 헛발질

100년 기업으로 성장을 이어가던 시어스와 그 자회사 K마트는 1990년대 들어 대형 유통업 시장에서 벌어진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월마트 등 대형 할인매장이 주도한 가격 파괴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당시 성장하던 월마트나 타겟과 같은 신형 유통체인은 소비자 성향을 분석해 시장성이 높은 상품으로 배치하는 전략을 택했다. 예컨대 월마트는 IT기술을 활용해 모든 거래 현황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통계 수치들을 확인하고 상품전략에 반영했다. 반면 시어스는 지점 운영을 각 직원들에게 맡기는 운영을 오랫동안 이어가면서 격차가 좁혀졌다. 
출처 Pxhere
월마트의 약진을 보면서도 시어스 경영진은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신형 유통업체들이 고가 제품을 파는 시어스를 넘어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판이었다. 월마트 등은 소비자 분석을 통해서 보다 다양한 체험들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자 자리를 월마트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시어스가 회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 무리하게 금융업으로 진출한 것 역시 패착으로 평가된다. 생명보험 등의 사업은 유통과 별다른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사업 부진 끝에 시어스는 금융 부분을 1990년대에 매각했는데 이 잠시 한눈을 팔았던 사이 유통업체로서 성장은 정체돼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머스의 성장은 시어스 몰락의 결정타가 됐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들은 시어스가 온라인 쇼핑을 하는 고객들을 유인할 만한 전략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시어스가 혁신의 먹잇감이 되고 만 것이다. 


옛 영광 탓 구조조정 속도 더뎌..."격세지감"

파산 신청을 한 시어스는 현재 운영되는 687개 지점 중 수익성이 없는 142개 지점을 연말까지 폐쇄키로 했다. 나머지 매장들도 순차적으로 매각하면서 구조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시어스 매장의 평균 넓이는 1만3000㎡ 수준이다. 1900년대 중반 압도적인 규모로 지역 상권의 핵심역할을 담당했다. 대형 점포화가 전략이었다. 지금은 이 과거의 영광이 시어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시장에서 대형 매장을 임차할 사업자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매장판매도 쉽지 않아 자금 확보도 난관에 빠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시어스는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부채를 줄이는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워낙 실적이 부진한 탓에 시장에선 채무 조정 가능성도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32만 명에 달했던 시어스 직원은 현재 7만 명 수준까지 줄었다. 
매각절차에 들어간 미국내 시어스 매장 중 한 곳. 출처 플리커
시어스의 파산 신청은 아무리 거대한 업계 공룡이라고 하더라도 혁신을 멈추는 순간, 몰락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십년 동안 정상을 지켜온 기업조차 예외는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