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피카소가 거장이 된 이유, 모방에서 창조까지

피카소가 거장이 된 이유, 모방에서 창조까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인간은 누구나 모방을 한다. 모방을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합리적' 판단에 의한 선택이라 분석한 이론도 있다. 그러나 모방은 창조와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피카소는 70세 넘게까지 다른 화가의 그림을 모방했고, 이를 재해석해 창조의 발판으로 삼았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모방을 통해 빨리 배우고, 변형하며, 궁극적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 경쟁자를 넘어설 수 있다.  


피카소는 왜 다른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렸을까?

스페인 미술의 거장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만큼 화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은 없다.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가 화실을 방문한 공주와 시녀들을 그린 초상화지만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 장면에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공주 옆에 붓을 들고 있는 화가 자신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또 맨 뒤에서 한 남자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엔 국왕 부부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 즉 이 그림은 그림 앞에 있는 국왕 부부의 시선에서 그린 것이다. 그래서 그림 안의 화가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게 공주인지, 국왕 부부인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의 주인공은 공주가 아니라 화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하나의 그림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어선지 후배 화가들은 이 그림을 수없이 모방했다. 그중 이 그림을 가장 사랑하고 평생 제일 많이 그린 사람은 피카소다. 16세 때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 '시녀들'을 보고 감동했다. 그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매일 이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서 실력을 키웠다. 심지어 76세의 노년에도 영감을 얻기 위해 같은 그림을 따라 그렸다. 20대에 이미 입체파라는 현대미술 사조를 창시한 거장이었던 피카소가 다른 그림을 모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피카소에게 모방은 창작의 시작이었다. 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피카소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주제는 없다. 그는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주제를 취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단지와 접시를 장식할 뿐이다."


본능적인 모방, 합리적 판단에 의한 모방

모방을 하는 이유에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따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간다. 사회와 국가는 더 발전한 사회를 모방하면서 문명을 이룩해왔다. 남을 따라 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기에 모방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심리학의 동조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타인과 의견이나 판단이 다를 때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낀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다수의 견해에 맞춘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다수에 동조하는 것처럼 기업도 비판 없이 다른 기업들을 따라 한다. 기업도 사회의 법규나 관습을 지켜야 한다. 사회의 규범을 따르기 위해 다른 기업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강제적 동질화라 한다. 또 성공한 다른 기업을 모방하기도 하는데 이를 모방적 동질화라 부른다. 업계의 표준을 따르거나 대학, 언론, 컨설팅회사의 충고를 따라 다른 기업을 모방하는 것은 규범적 동질화다. 인간이 그런 것처럼 기업에도 모방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다.

물론 합리적 판단에 의해 모방하기도 한다. 모방은 그만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에 국한해 살펴보자. 첫째로 신제품 개발에 따르는 위험이나 비용이 적다. 둘째, 초기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를 저명한 경영학자인 레빗(Theodore Levit)은 '먹다 남은 사과 이론'으로 설명했다. 사과를 먼저 먹는 것보다 남들이 한 입 베어 문 것을 보고 그 사과가 쓴지 단지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는 비유다. 셋째, 선발자처럼 성공에 만족해서 잠재된 위험들을 가볍게 여기는 자만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 핵심은 '빠른 모방자 전략'을 택하라는 것이다. 선발자가 당면하는 약점은 최소화하되 너무 늦게 출발해서 갖게 되는 불이익을 피하라는 충고다. 그러고 보면 모방에 대한 논의에서 창조와 혁신을 다룬 것은 많지 않다. 여기에서는 모방의 창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보겠다. 


모방이 창조로 승화되는 세 가지 단계 - 학습, 변형, 초월


(1) 모방을 통해 빨리 배울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재해석한 피카소의 <시녀들>
피카소는 미술 교사의 아들로 1881년 스페인의 낙후된 해안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동이었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자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아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피카소는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학교 규칙이나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마드리드 미술학교로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보다 유능하다고 생각했던 피카소가 학교에 남긴 힘들었을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고 마드리드 시내를 떠돌던 피카소는 프라도미술관에서 배울 대상을 찾았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접한 것이다. 그는 매일 미술관에 들러 하루 종일 벨라스케스와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실력을 키웠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요령도 생기고 쉬워진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하는 일에 대한 지식도 쌓인다. 그래서 생산성이 올라간다. 이를 학습곡선이라 한다. 모방을 하면 학습곡선을 따라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한 배경엔 이러한 과정이 있다.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일본 기업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를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재빠르게 학습할 수 있었다. 


(2) 변형한다
모방을 하다 보면 대상을 변형하고 개선하게 된다. 피카소는 76세 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입체파라는 자신의 화풍을 완성한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자기 스타일로 변형해 그렸다. '시녀들' 전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일부를 떼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그리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박물관에 가면 이렇게 해서 그린 피카소 버전의 '시녀들'이 58점이나 전시돼 있다. 피카소는 다른 작품을 모방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테니 말이다.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화가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피카소의 <시녀들>
모방은 자연스레 개선으로 이어진다. 훈수효과 때문이다. 만든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어색함이나 부족함이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쉽게 인지된다. 가령 해외의 성공한 비즈니스를 모방한다고 해보자. 그것은 그 나라의 제도, 문화, 국민성과 그 회사 특유의 전통과 관행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에겐 뭔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도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특징에 맞게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모방이 변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디어의 속성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백지에서 나오기 힘들다. 피카소가 남의 작품을 모방한 것도 백지상태에서 주제를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다른 아이디어라는 스파크를 필요로 한다. 따라 하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행동하면서 깨닫는 것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좌), 제트블루항공(우) / 출처 위키피디아(좌), flickr ©Tomás Del Coro(우)
항공업계만큼 모방이 잘 일어나는 곳도 없다. 197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서 시작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저가항공이라는 사업모델로 성공했다. 허브 공항을 두지 않고 왕래가 잦은 두 지역을 연결하는 노선 정책, 보잉 737 단일 기종 운항을 통한 관리비용 절감, 기내식 등 부가서비스 폐지, 좌석제 폐지, 단일 요금제, 빠른 회전율 등의 정책을 펼쳐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항공권을 판매했다. 이를 따라 수많은 항공사가 저가항공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대형 항공사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나지 않아 실패했다. 대부분 소규모 신생 항공사들이 사우스웨스트의 모델을 충실히 실행했다. 

그중 제트블루는 저가항공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에 새로운 변형을 시도했다. 제트블루는 지점별 저가항공을 유지하면서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지점별 운항 정책, 단일 모델 비행기 운항, 요금 구조의 단순화 등은 사우스웨스트를 모방하면서도 가죽 시트에 개인용 TV 스크린이 달린 좌석을 제공하는 등 기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특화했다. 이러한 전략의 변형으로 제트블루는 저비용을 유지하면서도 사우스웨스트보다 더 나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해 승객을 끌어들였다. 현재 제트블루는 타 항공사로의 이동률이 가장 낮은 항공사 중 하나다. 


(3) 넘어선다
완전한 모방을 해보면 대상의 원리와 작동방식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분석적 지식이 아닌 종합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결국 자신만의 '시녀들'을 그렸듯이 수많은 문학가가 모방을 통해 자신의 문체를 창조해왔다. 

소설가 신경숙은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면서 문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문학을 익히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은 암송이다. 그래서 영문학과 불문학과에서는 장편의 시를 암기하는 시험을 본다. 문학이 발달한 프랑스의 국어 시험에는 시 암송이 빠지지 않는다.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시의 흐름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암송하는 것이다. 악센트를 제대로 안 주거나 쉬어야 할 부분을 지나치면 점수를 깎는다. 

외우기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학습하는 방법이다. 오래전부터 'learn by heart'는 영어에서 '암기하다'란 뜻으로 쓰였다. 즉 암기란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배우는 것이다. 머리로 배우는 것은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지만, 가슴으로 배우는 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세상을 머리로 이해하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로 암기이며 모방이다. 그래서 모방은 부분을 분석하지 않고 전체를 보게 한다. 외우면서 자연스레 문학을 터득하고 글을 쓰는 능력이 길러진다. 뛰어난 평론가 중에서 위대한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론가는 문학을 분석하는 사람이다. 나누어 분석하는 버릇이 생기면 창조할 수 없다. 

가끔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확히 규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한 기업을 따라 해보면 그 과정에서 모르던 문제를 깨달을 수도 있다. 사우스웨스트항공도 사실은 모방으로 시작했다. 기존 항공사와 다른 식으로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사우스웨스트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미국 최초의 저가항공사인 퍼시픽사우스웨스트항공 매뉴얼을 가져와 통째로 모방했다. 모방을 거치면서 사업을 크게 바라보게 됐고 경영자들은 업의 핵심을 깨달았다. 그러자 퍼시픽사우스웨스트와는 전혀 다른 조직문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피카소는 20대 초반에 이미 단순 모방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 시기를 '청색 시대'라고 한다. 청색을 활용해 알코올 중독자, 걸인, 장님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이때의 그림에 있는 형태나 인물의 자세는 고흐, 드가, 고야 등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곧 끝났다. 26세에 그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선보이며 입체파를 창시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그림을 창조한 것이다. 

어떻게 모방에서 창조로 이렇게 빨리 도약할 수 있었을까. 신동이었던 그는 자존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선배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모방했지만 그는 그것을 넘어서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생각이 투철했다. 애초에 창조를 위해 모방한 것이다. 결국 그의 창조의 원동력은 남과 다른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51호
필자 이병주

인터비즈 문채영,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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