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횡(橫)대에서 종(縱)대로.. 금기 깨고 열세 극복한 프로이센군

횡(橫)대에서 종(縱)대로.. 금기 깨고 열세 극복한 프로이센군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757년 영국에서 여러 술집들이 간판을 고쳐 달았다. 새로운 가게 이름은 '킹 오브 프로이센'. 그 술집은 새로 등장한 전쟁 영웅에 대한 찬사와 그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주인공은 바로 프리드리히 2세다. 그는 18세기 중반까지 한 번도 유럽의 강국이 되지 못했던 독일을 마침내 경제력만이 아니라 군사력으로도 유럽 최고 국가로서 기틀을 잡은 인물이었다.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유럽의 두 거인이었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부상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1756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시작하자 프랑스, 지금은 독일이 된 작센과 바이에른, 영국, 스웨덴에 러시아까지 가세했다. 당시로서는 한 개의 영주국에 불과했던 프로이센이 전 유럽의 강국을 상대로 싸우는 유래없는 일이 시작됐다. 
이것이 7년 전쟁이다. 그나마 영국이 발을 뺀 게 프로이센으로서는 다행이었지만 누구도 그들이 전쟁에서 배겨날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7년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의 영토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오스트리아군, 프로이센군에 눈 뜨고 코 베이다
프리드리히 2세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1757년 11월 로스바흐 전투에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는 3만 명의 군사로 5만 명의 프랑스군에게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깐,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상대하는 틈을 노려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의 실레지엔 지방을 침공해왔다. 프리드리히는 서둘러 실레지엔으로 회군했지만 전황은 오스트리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하게 돌아갔다. 오스트리아군은 이미 프로이센군의 회군을 예측하고 그들을 요격하기 유리한 로이텐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수(先手)를 뺏긴 프로이센은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고 실레지엔을 탈환해야 했다. 공격 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수비군의 5배의 병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유리한 지형을 장악하고, 충분히 진지를 구축하고 있으면 필요 인원은 10배 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겨우 3만의 프로이센군이 전술학의 교범대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8만 명의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군 좌익의 끝은 고지와 강으로 완벽히 보호되고 있었다. 그나마 우익 쪽이 습지와 숲으로 접근 가능한 지형이었다. 하지만 당시 전투는 긴 횡대의 밀집 대형을 이루고,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적들 앞으로 곧바로 서서 걸어서 전진하는 방식이었기에 숲도 장애물이 많아 곤란했다. 유일한 방법은 습지를 횡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습지도 프로이센군이 보행에 애를 먹는 동안, 오스트리아군이 총알 세례를 퍼부을 것이었다. 지형을 이용한 오스트리아군의 진형 배치는 나무랄 데 없어보였다.
로이텐 전투 진행도 (출처 DBR 수정)
하지만 오스트리아군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었다. 지형을 완벽하게 선점하려다 보니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선이 8km나 될 정도로 길게 늘어섰던 탓에 대형이 너무 얇아져 있었다. 그렇다면 프로이센군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공격 지점을 하나 선정한 뒤 희생을 각오하고 병력이 얇은 지점에 병력을 집중 투입하는 방법 뿐이었다.

프로이센군은 기병으로 오스트리아군의 우익에 혼란을 주고 본대는 좌익으로 돌리는 양동작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군은 그들을 보면서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프로이센군이 진군해온대도 엄청난 희생을 치룰 것이 분명했으며, 프로이센군의 전략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공격에 대비해예비대를 편성해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군의 눈앞에서 갑자기 프로이센의 횡대가 카드섹션을 하듯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종대로 변형했다. 그리고 미처 대열을 재편하지 못해 흐트러진 오스트리아군의 왼쪽 끝부터 먹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띤 오스트리아군은 가로 길이로 보면 프로이센군의 세 배에 가까웠지만, 세로 길이는 얇아서 병력의 우위는 의미가 없었다. 오스트리아군은 대패하고 2만여 명이 전사했다. 프로이센의 사상자는 겨우 6400명이었다.


결론을 외우지 말고 전제를 생각하라

진군하는 프로이센군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프로이센군의 비밀 병기는 횡대에서 종대로의 전환이었다. 단순히 우향우나 좌향좌를 해서 횡대에서 종대로 전환한 것이 아니고 여러 횡대로 구성된 대형이 행진하면서 동시에 분해-결합하는, 제식 훈련 중에서도 제일 고난도 기술이다. 프로이센군은 평소에 이 훈련을 엄청나게 해두었기 때문에 로이텐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속이고 측면을 때릴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오스트리아와 다른 유럽군대는 왜 이런 공격 방식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적과 근접 대치한 상태에서 대열을 전환하는 기동은 수천 년간 전쟁터의 금기 중 금기였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중장보병들은 밀집 대형을 형성해서 적과 백병전을 벌였다. 중장보병들의 갑옷과 모든 보호구는 정면만 향한다. 측면과 후면까지 갑옷을 두르면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동도 매우 신중해야 했다. 적 바로 앞에서 아군의 보호되지 않은 측면을 노출하는 전환 기동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총이 등장하면서 사격 능률을 저해하는 방패와 갑옷은 완전히 버려졌다. 중장보병이 사라진 것이다. 그에 따라 전투기동에서 대형 전환 불가라는 원칙도 사라져야 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대부분의 장교들은 대형 전환 불가라는 원칙이 왜 생겼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전술 교리만을 외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반면 프리드리히 2세는 단순히 전술 교리의 결론이 아니라 전제를 생각하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었기에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전쟁도 경영도, 원리를 이해해야 창조적인 전략가가 될 수 있다

훗날 한 대위가 프리드리히 2세에게 "폐하처럼 훌륭한 전략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왕은 전쟁사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다. 대위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자신은 그런 이론보다는 실전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대에 전투를 60회나 치룬 노새가 두 마리가 있다. 그러나 걔들은 아직도 노새다."

프리드리히가 전쟁사를 추천한 이유는 전술의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원칙과 전제를 찾으라는 의미다. 그래야 변화에 대응하고 창조적 대책을 창출하는 능력이 생겨난다. 전쟁사든 경영사든 어떤 전술이나 방법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리와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이 전술은 좋은 전술이고, 이 전술은 나쁜 전술이다, 누구는 이 방식으로 성공했다더라, 이것이 최신 경영 기법이다'라는 식으로 외형만을 취한다면 또다시 노새가 되는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DBR 2010년 3월 호 <전쟁을 60번 치러도, 노새는 노새일뿐...>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53호
필자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인터비즈 오종택,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