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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 났어요' 광고하니 매출 상승? 유리한 판을 짜는 프레임의 힘

[DBR/동아비즈니스리뷰] 때는 1912년, 제27대 미국 대선 현장.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 후보 선거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300만 부나 제작한 홍보 팸플릿의 사진 아래에 'Copyright by 000'라는 문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개인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참모진의 실수로 무단 사용한 셈. 저작권법에 따라 최소 300만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사진사에게 지불하거나, 저작권 무단 도용에 따른 도덕성 시비를 감내해야 할 상황이었다.

곤란하기 그지없을 상황에 처했음에도 선거 본부는 놀랍게도 사진사에게 단 1달러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해냈다. 오히려 사진사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후원금으로 250달러를 받아냈다. '협박'도 '마술'도 아니었다. 바로 상대를 틀 속에 가두는 '프레임(Frame)'의 힘이었다.


협상의 틀을 장악하는 세 가지 심리 기법

루즈벨트 선거 본부의 접근 방법은 이랬다. 선거 운동 본부장은 사진사에게 연락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 후보의 선거 팸플릿 300만 부에 당신의 이름이 박힌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제 당신은 유명 사진사가 될 겁니다. 우리가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니 당신도 선거 기금으로 1000달러 정도를 후원하면 어떨까요?" 선제적 대응으로 사진사의 생각을 '사진 저작권료'가 아닌 '개인 작품 홍보'라는 틀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어떤 프레임, 즉 '틀'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협상에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볼 수 있다. 협상 상대가 가진 생각의 '틀'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면 협상은 너무도 쉬워진다. 협상의 고수로 거듭날 수 있는 3가지 유용한 방법을 소개한다.

1) '앵커링(Anchoring)'을 걸어라 
협상을 처음 제안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적당히 부르자니 상대가 나를 얕보고 불리한 조건을 걸지 모르고 세게 부르자니 협상이 깨질까 두렵다. 이에 프로 협상가들은 목표를 높게 잡고 강한 첫 제안을 하라고 말한다. 목표를 높게 잡고 강한 첫 제안을 하면, 마지 닻을 내리듯 협상의 범위를 결정짓는 '준거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행동경제학에서 이를 증명한 재미난 실험 결과가 있다. 연구자는 1부터 8까지의 숫자를 곱한 값이 얼마 정도 될 것 같은지를 묻는다. 다만 A 그룹에는 '1×2×3×4×5×6×7×8 의 값'을, B 그룹에겐 '8×7×6×5×4×3×2×1'의 값을 물었다. 결과는? 숫자 '1'로 시작된 문제를 받은 A 그룹 답변의 평균치는 512였다. 반면 '8'로 시작된 문제를 받는 B 그룹의 평균치는 2250으로 무려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첫 숫자가 무엇인가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그럼, 내가 무조건 첫 제안을 하는 게 좋겠군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해보자. 해외여행 중 골동품 시장에서 멋진 카펫을 발견한 당신. '강한 첫 제안'을 한다고 "10달러"를 불렀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흔쾌히 "OK"를 외친다. 이 순간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 '좀 더 낮은 가격을 불렀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문제는 '정보'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의 섣부른 첫 제안은 '이기고도 진' 승자의 저주를 만든다.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상대의 제안을 기다려라. 상대의 제안을 듣고 협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먼저다.

2) 단점을 인정하고 '이용'하라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고전하던 폭스바겐. 하루는 이들이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고를 실었다. '불량품이 생겼다'는 걸 알린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 차는 글러브박스 띠에 작은 흠이 있어 교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엔 잘 띄지 않을 작은 흠이지만 크루트 크로너라는 검사원이 발견해 냈습니다.
스스로 결점을 강조했던 폭스바겐의 광고
광고를 본 사람들은 생각했다. '폭스바겐은 작은 것 하나까지도 꼼꼼히 확인하는 기업이구나.' 남다른 마케팅 전략 덕분인지 이후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승승장구했고 1955년 미국 진출 6년 만에 100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
 

협상을 앞둔 많은 사람들은 자사 제품의 장점만을 강조하며 '우리는 완벽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러나 제안을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정말 최고군요"라며 감탄하는 대신 '이 제안에 숨겨진 문제는 뭘까'를 고민한다. 그리고는 기어코 문제점을 발견해 내고 거꾸로 물어온다. "이런 문제를 발견했는데 이건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프로 협상가들은 다르다. 단점을 인정한다. 필요하다면 고객이 묻기도 전에 먼저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별것 아니라고 싸우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지를 함께 의논한다. 이 과정에서 얻는 것은 상대의 신뢰다. 한발 더 나가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경쟁사에 비해 품질도 좋고 가격도 싼 제품을 생산하는 당신. 하지만 제작 기간이 오래 걸려 고객이 요구하는 일정을 맞추긴 어렵다. 이 때 '일정'이라는 나의 문제를 인정하고, 그 문제를 '품질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바꿔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희 제품이 경쟁사 제품에 비해 출시 시기는 좀 늦습니다.
좀 더 복잡한 품질 검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덕분에 불량률이 훨씬 더 낮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5% 저렴합니다.



3) 손실회피 심리를 자극하라 
1. 당신은 천만분의 일(1/10000000)로 사망할지도 모르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됐다.

당신은 이 약에 얼마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2. 당신은 신약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봤다.

수차례 임상 실험을 통해 안정성은 충분히 검증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의해 천만분의 일(1/10000000)로 사망할 수도 있다.

당신은 얼마의 참가비를 주면 이 실험에 참가하겠는가? 

  눈치 챘겠지만 두 상황은 동일하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대부분의 독자들은 1번보다 2번 퀴즈에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생각했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권위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손실을 이득보다 2.5배 정도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부른다. 
트럼프 타워 (출처 위키피디아)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과거 뉴욕 맨해튼 5번가에 트럼프 타워를 지을 때 티파니 사(Tiffany & Co)와 협상을 벌였다. 5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서 근처 티파니 스토어의 공중권이 필요했는데, 건물 주인 월터 호빙(Walter Hoving)이 조망권 등을 이유로 공사를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는 고심 끝에 협상장에 두 개의 건물 모형을 가지고 갔다. 하나는 티파니 스토어에 어울릴 만한 멋지고 우아한 50층짜리 트럼프 타워, 다른 하나는 티파니 사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뉴욕시 지역 개발국이 짓게 될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벽면 전체가 철망으로 덮여 있어 보기 흉했다.
 호빙의 선택은? 당연히 전자, 트럼프의 제안을 택했다. 트럼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를 협박하거나 애걸하지 않았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상대가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줬을 뿐이다.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마라, 대신 '프레임'을 짜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Wharton)스쿨에서 수많은 경영인들에게 협상을 가르치는 리처드 셸(Richard Shell) 교수는 말했다. 

"당신은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상대가 스스로를 설득하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상대와의 협상에서 성공하고 싶은가? 그럼 내가 팔고 싶은 것을 상대가 먼저 자기 것으로 생각하도록 하라. 그리고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고 느끼게 만들어라. 당신의 말로 상대를 움직이겠다는 건 욕심이다. 그저 상대가 사기 위한 멋진 판을 꾸려 주는 것, 그게 바로 프레임의 힘이자 당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 이 글은 DBR 2012년 6월 호 <단점 먼저 인정하고, 상대를 내틀에 가둬라>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07호
필자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 / 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인터비즈 오종택,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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