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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특공대' 가미카제와 델타항공의 실패, 공통점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손자병법의 일곱 가지 계책은 모두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재무난에 빠진 회사는 통상 인력 구조조정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핵심인재가 이탈해 실적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쟁, 그리고 기업 경영에서 ‘사람 중시’ 여부가 승패 및 성패를 좌우했던 실사례들을 두 가지 소개하려 한다.


전쟁 사례: 일본의 패전 원인과 가미카제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4년 9∼10월경 일본은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미국 함대는 남태평양의 섬을 하나하나 점령해 가면서 북상해 오고 있었다. 몇 번의 큰 해전에서 패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이나 전함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일본군 수뇌부는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직접 적함에 돌진시키는 자살 공격을 생각해냈다.
태평양전쟁의 참혹한 현장 / 출처 위키피디아 커먼스
‘가미카제(神風)’란 1274년에서 1281년 사이 몇 차례 일본을 정벌하러 온 고려, 몽골의 연합군이 탄 함대를 그때마다 수장시켜 원 세조 쿠빌라이의 일본 정복을 좌절시킨 태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해군은 이런 자살공격을 수행할 부대에 ‘가미카제 특별 공격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후 일본 내에서는 모든 형태의 자살 공격을 가미카제라고 통칭하게 됐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당시 상황을 묘사한 삽화 / 출처: 일본 위키피디아
공식적인 첫 번째 가미카제 부대는 1944년 10월 19일 조직됐다. 지휘는 세키 유키오(關行男) 대위가 맡았다. 그가 이끄는 5대의 제로센 전투기는 10월 25일 오전 미 해병대의 필리핀 레이테 섬(Leyte Island) 상륙을 엄호하던 미 함대에 공격을 가했다. 호위 항공모함 ‘세인트 로(St. Lo)’를 격침하고 다른 함정 몇 척도 손상을 입혔다.
가미카제가 폭탄을 달고 추락하는 모습 / 출처: 동아일보(좌), 위키피디아 커먼스(우)
처음에는 제로센 같은 전투기에 250㎏짜리 폭탄을 두 개 달고서 조종사가 자신의 비행기와 함께 적의 함정에 돌진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였다. 연료도 적진에 도달할 만큼만 주어졌다. 돌아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가미카제 공격 수단도 다양해졌다. 폭격기에 실려가다 적의 함대 근처 상공에 이르면 분리돼 조종사가 적 함정으로 조종해 들이받는 로켓추진 폭탄 ‘오카(櫻花)’, 잠수함에서 발사된 후 인간이 조종해 적함으로 돌진하는 어뢰 ‘카이텐(回天)’, 쾌속 보트에 폭탄을 가득 싣고 적함으로 돌진하는 ‘신요(震洋)’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인명 경시의 산물들이다.
1944년 일본 가미카제 공격에 폭격당하는 미 항공모함 / 출처: 일본 위키피디아
일본군의 인명 경시 풍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세가 기울기 시작한 이후부터 일본군 수뇌부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 숙련공들을 빼내 전투병으로 전장에 보냈다. 숙련공이 없는 공장은 비숙련 부녀자가 채웠다. 공정을 감독해 품질을 유지해줘야 할 기술자마저 없으니 전투기의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다.

최전선에서는 일선 정비병들에게 총을 들려 전장에 투입시켰다. 사정이 이렇자 종국에는 적탄에 떨어지는 비행기보다 기체 결함으로 떨어지는 비행기 수가 훨씬 많아졌다. 총 60기 이상의 적기를 떨어뜨리며 일본군 조종사 중 최고의 격추왕으로 꼽힌 사카이 사부로(坂 井三郞)는 전후 인터뷰에서 “일본이 패전한 원인은 좋은 기술 인력과 숙련된 전사를 가볍게 여긴 탓”이라고 말했다.



경영 사례: 델타항공과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상반된 인사 전략과 결과

미국 항공운항 산업은 1978년 새 법이 통과되면서 구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노선, 운임, 신규 진입에 관한 규제가 없어진 것이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대거 진입하기 시작했고 항공사 간 가격경쟁이 격화됐다. 이에 여객 운임이 크게 떨어졌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항공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는 인수됐고, 일부는 도태됐다. 1980년대 초에 15개의 기존 항공사들이 한계 상황으로 몰리거나 합병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설상가상, 1990년대 초 걸프전 발발로 유가가 폭등해 미국 경제가 큰 불황에 빠졌다. 고유가와 수요 감소라는 이중고가 항공운항 산업을 엄습했다. 그 결과 1980년대부터 부실화가 진행되던 팬앰(Pan Am), 이스턴(Eastern) 등 대형 항공사들이 파산했다. 업계의 구조 재편이 또 한 번 진행됐다. 

이 가운데 기존 업체 중 대형 업체인 델타항공(Delta Air Lines)과 규제완화 이후의 신생 항공사 중 두각을 나타내던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의 엇갈린 행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두 회사 모두 똑같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인력 관리 측면에서 상반된 전략을 취한 결과, 이후 10년간 상반된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대형 항공사 델타항공(왼쪽)과 신생 항공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인력 관리 운용에 있어 상반된 전략을 채택, 엇갈린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 출처 각 사 페이스북
항공운항 산업은 특히 사람이 중요한 산업이다. 가령 조종사의 숙련도에 따라 안정적인 비행 환경과 편안한 이착륙 여부가 결정된다. 승무원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정시 이착륙 여부 및 전반적인 서비스 품질을 결정한다. 서비스 품질은 그대로 항공 운항사의 평판으로 돌아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 말 항공운항 산업의 규제완화가 시작될 때, 델타항공은 메이저 항공운항 회사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이 회사도 ‘사람이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인식하에 우수한 인재를 붙들고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을 제공했다. 이렇게 좋은 대우는 노선 및 요금 규제로 인해 창출되는 수익으로 뒷받침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규제완화의 파고로 업계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을 단행할 때에도 이 회사는 정리해고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경영실적에 근거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종업원들은 우수한 고객 서비스로 회사에 보답했고 이는 다시 회사 성장의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불황과 고유가의 이중고로 인해 4년간 적자가 지속되자 당시 최고 경영진은 기존 인력 관리 정책을 바꿔 약 1만 5000명(당시 전체 직원의 약 17%)을 정리해고했고 임금까지 삭감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델타항공의 서비스 질은 크게 악화됐고 고객 불만도 산업 평균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 후 1990년대 중·후반 세계 경제의 호황에 따라 흑자로 전환된 이 회사는 예전의 인력 관리 정책 기조로 회귀해 임금 인상과 복지 확충을 꾀했다. 
델타는 인력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만다 / 출처 델타 페이스북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사태 후 항공산업이 다시 침체에 빠지자 델타항공 경영진은 2004년 또다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무려 30% 이상 임금을 삭감했고, 퇴직연금 및 복지혜택 축소 등을 통해 총 10억 달러(1조 1147억 원) 상당의 인건비를 감축했다. 

이런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악화일로를 걸었다. 결국 델타는 2005년 3월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인력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수많은 숙련된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회사를 떠난 결과 그들에게 체화돼 있던 기술, 지식, 세부적인 업무 노하우 등 무형의 자원까지 회사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파산의 길목에 서 있던 델타항공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 역시 ‘사람’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2007년 파산 보호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델타항공은 이듬해 대형 항공사인 노스웨스트항공(Northwest Airlines)과 합병한다. 
승승장구했던 델타항공은 신생 회사인 노스웨스트항공에 합병당하고 만다 / 출처 델타 페이스북
당시 노스웨스트항공과의 합병을 주도했던 리처드 앤더슨(Richard Anderson)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 항공사를 출범시키면서 한 가지 중요한 공약을 내걸었다. 바로 감원을 최소화하고 조종사 급여를 30% 인상하며 모든 직원들에게 이익의 15%를 공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주효했다. 델타와 노스웨스트 항공은 합병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AQR(항공사 품질평가) 보고서 결과를 보더라도 2012년과 2013년 연속 업계 4위(총 15개 항공사 중)에 기록되는 등 서비스의 질도 근 20년 만에 상위권으로 복귀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 등의 악수를 둬 우수 인재가 유출하고 고객 이탈로 한때 곤욕을 치렀던 델타와 달리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초지일관 사람을 중시하는 인사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어느 순간이나 사람을 우선시했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현재까지도 서비스 질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 출처 사우스웨스트항공 페이스북
1967년 텍사스 주의 지역 항공사로 출범한 사우스웨스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창업주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 회장은 한 연설에서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는 사람이다. 경쟁업체들이 우리 비행기 등의 하드웨어는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지만 우리 직원들을 결코 복제해갈 수는 없다"라며 무엇보다 직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켈러허는 추수감사절이 오면 직원들과 함께 수하물 적재를 하거나 직원들과 파티를 함께 즐기는 등 권위의식을 버리고 ‘직원도 즐겁고, 고객도 즐거운 회사’를 만드는 데 솔선수범했다. 이러한 창업주의 의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임직원들은 목표와 지식을 공유하고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 서비스 품질과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위에 언급된 두 회사의 사례는 기업 경영의 요소 중 인적자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기업 경영의 성공은 무엇보다 우수한 직원들을 얼마나 잘 유지하며 이들이 의욕을 가지고 일하게 만드는 데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84호
필자 김경원 세종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원장

인터비즈 권성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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