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관리\"전하 실망이옵니다!\" 쓴 소리 기꺼이 경청한 세종의 리더십

"전하 실망이옵니다!" 쓴 소리 기꺼이 경청한 세종의 리더십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인재가 자신의 역량을 남김없이 펼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그의 신념과 뜻이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하며, 설령 리더에 대한 비난이더라도 리더는 항상 그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해줘야 한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상사 때문에 "회의를 할수록 회의감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0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회의문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6%가 '상사의 의견대로 결론이 정해진다'고 답했다. 상사가 발언을 독점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61.6%에 달했다. 직장 내 회의 문화 점수는 100점 만점에 45점에 그쳤다. 

어쩌면 그 상사들도 원칙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실천. 우리가 '세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종은 역사 속 그 누구보다도 '반대 의견을 들으라'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실천했던 경영자이기 때문이다.


말뿐인 레드팀? 세종은 철저하게 운영했다

조직관리에서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나 ‘레드팀’의 필요성이 자주 언급된다. 의도적인 반대 의견과 문제 제기를 통해 미리 취약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객관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취지에서다. 실무단계에선 레드팀이 잘 돌아갈지 몰라도, 최고 리더에게까지 이 시스템이 적용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재벌그룹 총수의 결정에 반대하고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일상처럼 존재할 수 있겠는가? 보통은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절대군주였던 세종은 달랐다. 자신의 권력에도 불구하고 쓴소리를 기꺼이 경청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정반대 의견이나 자신에 대한 비난조차도 적극 권장했다. 한 번은 과거 시험에서 한 응시자가 세종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음에도 높은 순위로 합격해 논란이 됐다. 응시자는 훗날 단종 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였고, 당시 시험 책임자는 영의정 황희(黃喜)였다. 조정에는 하위지의 답안이 왕을 모욕했다며 하위지뿐 아니라 황희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뜻밖에도 세종은 하위지의 답안이 아니라 상소에 크게 화를 냈다. “과거를 실시해 대책(對策) 을 묻는 것은 장차 바른말을 숨기지 않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다. 설령 내가 노여워하며 하위지에게 죄를 주려고 해도 그대들이 적극 나서서 보호해야 마땅하거늘 도리어 하위지를 탄핵하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앞으로 내게 직언할 자들의 길을 막고 나아가 과거를 관장한 대신까지 공격해 국가에서 선비를 선발하는 공명한 정신까지 모욕하는구나.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닌가?”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 임원면접에서 회장을 대놓고 비난한 수험자가 정규직 취직은 물론 공개적인 칭찬까지 받은 셈이다.
형조참판 고약해 (출처 KBS 다큐멘터리 세종, 조선을 업그레이드하다 캡처)
그뿐만이 아니다. 세종은 자신에게 무례한 신하도 용서했다. '고약하다'라는 표현의 어원인 형조참판 고약해(高若海)의 일화가 재미있다. 고약해는 “정말 유감입니다. 전하께서 제대로 살피지 못하시니 어찌 신이 조정에서 벼슬을 하겠습니까” “지금 제 말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신이 잘못되었다고 하시니 참으로 실망이옵니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적이 있었다. 지금 관점에서 봐도 크게 예의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하물며 왕 앞에서 저랬다는 것은 처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세종조차도 그 순간은 매우 언짢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내 “내가 고약해의 무례함을 벌주려고 한다면 사람들이 내 뜻을 오해하여 과인이 신하가 간언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할까 염려가 된다”며 한발 물러섰다. 훈민정음 창제를 강하게 비난한 최만리를 옥에 가두었다가 바로 다음 날 석방하고 관직에 그대로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해도 좋으니 그저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라는 것이다.


'그냥 반대자'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반대자'를 키워라
세종의 비전에 적극 동참했던 신하들 (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캡처)
자유로운 반론을 허용함으로써 인재의 신념을 지켜줬던 세종의 태도는 주요 관직을 ‘반대자’로 채우는 것까지 이어진다. 이는 세종의 인사 운영이 갖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특히 임금과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삼정승은 대부분 세종을 반대했거나 세종에게 서슴없이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앞서 하위지의 사례에서 언급된 황희가 대표적이다. 황희는 세종의 밑에서 19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본래 ‘임금의 원수’로 불릴 정도로 세종의 정적이었다. 이 외에도 유정현, 최윤덕, 이직, 맹사성 등 세종 시대의 재상들은 대부분 세종의 결정에 자주 반대하고, 세종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던 인물들이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이었던 것은 허조(許稠)인데 그는 소수 의견이 일상이었다.

실록에 보면 다른 신하들이 모두 찬성할 때조차 ‘허조만 홀로 아뢰며~(獨許稠曰)’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세종은 “허조는 고집불통”이라고 불평하면서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6년간이나 인사를 총괄하는 이조판서로 중용했다. 정승이 됐을 때도 상당 기간 이조판서를 겸임하게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반대자는 ‘무조건적인 반대자’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반대자’여야 의미가 있다. 아무리 인재가 있더라도 임금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임금의 비전에 공감하고 동의해야 인재도 임금이 추진하는 사업에 기꺼이 참여하고 헌신하게 된다. 기획과 준비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반대하더라도 최종 결정이 나면 일사불란하게 힘을 합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리더와 참모 간에 굳건한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허조의 경우에도 “소신이 반대하였지만 끝내 전하의 허락을 얻지 못하였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의 의견을 들어 이만큼 고쳐주셨으니 이제는 시행해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죽으면서도 “성상(聖上)의 은총을 만나 간언을 올리면 실천해주셨고 의견을 말하면 경청해주시었으니, 내 이제 죽지만 여한이 없다”고 유언했을 정도로 충성심이 강했다. 자신이 반대 의견을 내면 임금이 경청하고 반영해줬고, 또 언제나 그럴 것이라는 점을 믿었기 때문에 설사 자신의 뜻과 다른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온 힘을 다해 헌신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대 의견의 가치를 알았던 세종, 오늘날 기업들도 배워야

세종대왕상 (출처 DBR)
흔히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둘 다 옳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이다. 국가 경영은 우선해야 할 가치를 선택하고, 자원 배분의 순위를 결정하는 등 ‘옳음’ 사이에서 이뤄진다. 이렇게 애매한 문제기에 세종도 무조건 옳은 생각만 하고 적절한 판단만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종의 최종 결정이 훌륭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엄한 왕명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신하를 곁에 두었기 때문이다. 왕의 면전에서 거침없이 반박하는 대신들이 그를 보좌했기 때문에 세종이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에서 비즈니스 결단을 내리는 과정도 이와 거의 유사하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고르면 다른 한쪽은 폐기하는 ‘전부(全部) vs 전무(全無)’의 게임이 아니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옳음’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반영해야 최선의 최종 선택을 내릴 수 있고, 여기에 반대자의 역할이 있다. 반대자의 소중함이야말로 오늘날 기업들이 세종의 회의에서 배워야 할 가치일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54호
필자 김준태

인터비즈 오종택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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