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브랜드 흥망사> 영광과 좌절의 그 이름, 대우자동차

<브랜드 흥망사> 영광과 좌절의 그 이름, 대우자동차

업계 2인자의 자리는 참 고달프다. 1인자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얻는 보상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을 팔더라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1인자의 제품이 불만족스러우면 “응? 내가 뭔가 사용법이 틀렸나?”하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2인자 제품이 맘에 들지 않으면 “역시 괜히 이걸 샀네!”하는 반응이 튀어나온다. 때문에 2인자는 1인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1980~1990년대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와 치열한 경쟁을 하던 대우자동차 역시 그런 딜레마를 안고 있던 회사다.
대우자동차 로고0
신진에서 GM코리아, 새한, 그리고 대우자동차가 되기까지

대우자동차는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을 모태로 한다. 미군에서 쓰던 차량을 인수, 개조해 판매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1963년에는 일본 닛산 자동차의 부품을 수입해 조립생산하던 새나라자동차를 인수, 본격적인 자동차 생산업체인 ‘신진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토요타의 부품을 수입, 조립 판매하던 신진자동차의 ‘코로나’
초기의 신진자동차는 일본 토요타와의 제휴를 통해 ‘코로나’, ‘크라운’등의 인기 모델을 생산,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1972년, 일본정부가 중국과의 통상을 하기 위해 저우언라이 4원칙(한국, 대만과의 거래를 끊어야 중국과의 무역이 가능)을 받아들임에 따라 토요타는 신진자동차와의 관계를 끊었고, 신진자동차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토요타의 모델을 생산할 수 없게 된 신진자동차는 미국 GM과 합작해 ‘GM코리아’를 설립했고 이를 기반으로 ‘시보레 1700’, ‘카미나’, ‘레코드’ 등의 GM 기반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GM 계열 차량들은 토요타 계열 차량에 비해 한국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다. 경영위기에 처한 GM코리아는 1976년, 산업은행이 신진자동차 몫의 지분을 인수함에 따라 ‘새한자동차’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1978년에는 대우그룹이 이를 다시 인수하고 GM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음에 따라 1983년에 ‘대우자동차’가 출범하게 된다.


‘로얄’로 시작해 ‘르망’으로 터 다진 1980년대

대우그룹의 총수였던 김우중 회장은 넓은 인맥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춘 인물이었다.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급격히 사세를 넓혔고,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율적인 경영을 중시했다. 대우자동차 역시 무리해서 완전 신차를 개발하기 보다는 기존 제품의 상품성을 개선한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을 다수 출시하는 마케팅에 주력했다. 새한자동차 시절의 ‘제미니’를 개량한 ‘맵시(1982년)’, ‘레코드 로얄’를 개량한 ‘로얄 XQ(1983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1980년대 한국 고급차의 대명사였던 ‘로얄’ 시리즈
맵시는 최대의 경쟁사인 현대자동차에서 출시한 ‘포니’ 시리즈에 밀려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로얄 시리즈는 큰 차체와 품위 있는 디자인을 인정받아 고급차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로얄 시리즈는 ‘로얄 프린스(1983년)’, ‘로얄 살롱 슈퍼(1986년)’ 등의 파생 모델을 다수 낳으며 198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고급차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대우자동차는 1980년대 중반에 들어 그동안 약세를 면치 못했던 소형차 시장에서 반격을 준비했다. 특히 이 시기의 대한민국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맞물려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본격화 되고 있어 생애 첫 차로 적합한 소형차의 선호도가 높았다. 당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현대자동차는 국내 소형차 시장의 최강자였던 포니 시리즈의 후속 모델, ‘포니 엑셀(1985년)’을 선보이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르망(1986년)은 당시로선 드물었던 유선형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당시 제휴 관계에 있던 GM 산하의 오펠에서 개발한 ‘카데트 E’를 기반으로 한 ‘르망’을 생산, 월드카를 기치로 1986년부터 판매에 나섰다. 르망은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날렵한 유선형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으며, 탄탄한 하체 및 고급스런 편의기능도 겸비해 특히 젊은 운전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대우 르망은 현대 포니 엑셀의 판매량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대우자동차가 현대자동차와의 양강구도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절반의 성공 거둔 ‘국민차’ 티코

이 시기에 본격화된 마이카 붐을 이어 가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이른바 ‘국민차 사업’을 준비했다. 자동차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작고 저렴한 차량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는데, 이를 위한 경형 자동차(이하 경차) 생산 업체로 대우그룹 산하의 ‘대우국민차(1999년 대우자동차에 통합)’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대우국민차가 1991년에 내놓은 한국 최초의 경차가 바로 ‘티코’다.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 ‘티코(1991년)’
일본 스즈키의 경차인 ‘알토’를 기반으로 개발한 티코는 796cc의 저배기량 엔진에 전장 3,340mm크기의 초소형 차량이었다. 300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연비가 장점이었지만, 빈약한 편의장비에 의심스러운 안전성 때문에 시장 초기 반응은 미지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들어 본격화된 세컨드카(기존 차량와 함께 운용하는 추가 차량)에 대한 수요 증가, 그리고 IMF 금융위기에 따른 실속 소비 경향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인기가 높아졌다. 티코로 시작된 대우 경차의 계보는 1998년 출시된 ‘마티즈’로 이어진다.


뒤늦게 눈 뜬 기술개발의 중요성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우자동차는 나름의 영역은 확보했지만 여전히 현대자동차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 보다는 이미 검증된 외부 기술을 사오는 것을 선호했던 대우그룹 전반의 성향과도 무방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역시 일부 기술을 외부(미쓰비시)에 의존한 것이 사실이지만, 1975년에 최초의 독자모델인 ‘포니’를 개발하고, 1991년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알파엔진’을 자사 차량에 탑재하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반면, 대우자동차의 경우는 여전히 대부분의 주력 제품이 GM을 비롯한 해외 업체의 모델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신차들 역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아닌 기존 차량을 일부 개선해 나온 것들이 많았다. 이런 차량의 경우, 연비나 주행 특성이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최신의 트랜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한때 고급차 시장을 지배하던 로얄 시리즈 역시 현대 그랜저(1986년)의 등장으로 인해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대우차 최초의 고유 모델이었던 에스페로(1990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우자동차는 1990년대부터 자체적인 기술력 향상에도 힘썼다. 그 첫번째 결과물이 1990년 출시된 대우자동차의 첫 번째 고유 모델인 ‘에스페로’였다. 에스페로는 본래 로얄 프린스의 뒤를 잇는 2000cc급 엔진의 중형 세단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엘란트라(1990년)’가 준중형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높은 인기를 끌자 대우차동차 역시 계획을 변경, 1991년부터 1500cc급 엔진을 탑재해 준중형차 시장을 공략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에스페로는 준중형급이면서도 중형급의 큰 차체를 가진 매력적인 상품성을 어필할 수 있게 되었고,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의 손을 거친 미려한 외형 역시 큰 호평을 받았다. 


드디어 찾아온 정상의 자리, ‘응답하라 1997’

에스페로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 대우자동차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기술 개발 부서를 확장하고 본격적으로 플랫폼(뼈대) 및 파워트레인(엔진, 변속기)의 개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은 대우자동차 최고의 해였다. 이 해에 대우자동차는 자체 개발한 고유 모델 3종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시했다. 
높은 정숙성을 강조했던 레간자(1997년)
소형차인 ‘라노스’, 준중형차 ‘누비라’, 중형차 ‘레간자’가 그것이었는데, 이들 신제품들이 인기를 모으며 1998년 상반기에 대우자동차는 사상 처음으로 현대자동차를 누르고 국내 자동차 판매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신진자동차 출범 43년, 대우자동차 출범 15년 만에 거둔 짜릿한 쾌거였다. 미국 수출도 본격화하고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는 등, 당시 대우그룹이 추진하는 ‘세계경영’도 본 궤도에 올랐다.
 

잠깐의 영광 뒤 너무 빨리 찾아온 몰락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우자동차의 위기는 최 전성기와 거의 동시에 찾아왔다. 1997년말 한국경제 전체를 뒤흔든 IMF 외환위기와 더불어 모 기업인 대우그룹이 경영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오히려 투자를 확대해 1998년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는 등의 공격적 경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룹 전체가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상당수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대우의 몰락은 막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한 김우중 회장이 1999년 해외로 도피하는 등의 사태가 겹치면서 대우자동차를 포함한 대우그룹 전체는 삽시간에 무너지고 결국 2000년, 대우그룹은 해체를 맞이하게 된다.
위기에 빠진 대우자동차를 지탱해 주던 마티즈(1998년)
이런 상황에서도 대우자동차는 ‘마티즈(1998년)’, ‘매그너스(1999년)’, ‘레조(2000년)’등의 고유모델을 꾸준히 출시하는 등, 마지막 사력을 다했다. 특히 경차인 마티즈는 당시 IMF 경제위기 속에서 높은 경제성을 인정 받아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중형차 매그너스는 국내 최초로 개발한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하기도 했다. 레조 역시 LPG 연료를 이용하는 미니밴이라는 점을 무기로 시장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던 소비자들은 대우차를 사는 것을 점차 꺼리게 되었고 판매량 역시 그에 비례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대는 물론, 기아자동차에도 밀려 업계 3위 이하로 자리하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다.
 
2000년 11월, 대우자동차는 최종 부도 처리되었고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당초 미국 포드에서 대우자동차의 인수를 고려해 협상을 진행했으나 2001년, 포드는 대우자동차의 인수를 포기했다. 대신 미국 GM이 대우자동차의 승용차 부문을 인수, 2002년 대우자동차는 ‘GM대우(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외에 버스 부분은 영안모자에서 인수해 ‘자일대우버스’로, 트럭 부분은 인도의 타타그룹이 인수해 ‘타타대우상용차’로 이름이 바뀐다. GM대우는 2011년에 ‘한국지엠’으로 회사명을 변경했으며, 그동안 판매하던 차량들 역시 ‘쉐보레’로 브랜드를 바꾼다. 이로서 승용차 브랜드로서의 ‘대우’는 사실상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불운

대우자동차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 태동기부터 활약했으며, 특히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현대자동차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국내 자동차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업체다.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던 르망, 국민차의 시대를 연 티코, 국산 자동차 디자인의 혁명을 알린 에스페로, 경차 전성시대를 연 마티즈 등,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차량을 상당수 배출하기도 했다.
 
해외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상품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고, 자체 기술의 개발에 소홀해 차량의 완성도가 경쟁사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다수의 고유 모델을 출시해 잠시나마 현대자동차를 누르고 업계 1위에 오르는 등의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직후에 국가경제가 무너지고 모기업이 공중 분해되는 최악의 불운이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차를 내놓는 등의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대우자동차는 쓰러지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토종 자동차 기업 3곳(대우, 삼성, 쌍용)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한국 국민들의 심정은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GM대우 라세티(2002년), (구)대우자동차 개발진들의 마지막 투혼이 담긴 차량이다
참고로 GM의 인수에 즈음해 대우자동차 내부에선 3종(올뉴 마티즈, 칼로스, 라세티)의 신형 소형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본래 소형차 제품군이 빈약했던 GM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신차를 다수 확보하는 행운을 얻었으며, 이는 GM이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뀐 2018년 현재, GM 본사가 한국GM(구 대우자동차)에 대한 신규투자 철회 및 법정관리를 예고했다가 취소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현재 경영정상화로 나아가곤 있으나, 한국시장 철수 이슈는 언제 또 터질지 몰라 많은 이들이 불안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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