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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냐, 사랑이냐?' 그 창조적 클리셰의 힘

[DBR/동아비즈니스리뷰]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가 있다. 순수하고 가난한 남자 A, 재력과 지위를 겸비한 남자 B. B가 재력을 바탕으로 저돌적으로 사랑을 밀어붙이자 여자는 흔들리지만,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해준 A에 대한 마음도 작아지지 않는다. 마침내 여자에게 최종 선택의 순간이 온다. 돈이냐, 사랑이냐?
클리셰 [Cliché]:
진부한 표현 혹은 상투구를 칭하는 비평 용어;
장르의 요구나 비판 없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특성

이 익숙한 갈등의 서사는 국내 거의 모든 대중문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클리셰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이 '뻔한' 내용에 마음을 빼앗긴다. 왜 우리는 여태껏 이 클리셰에 열광하고 있을까? 


'돈이냐, 사랑이냐?'는 질문의 유래  
소설 『장한몽』, Mnet 예능 프로그램 '러브캐처' / 출처 DBR, Mnet
한국 대중문화계에 '돈이냐, 사랑이냐?'는 질문을 탄생시킨 기념비적 소설은 1913년에 발표된 『장한몽(長恨夢)』이다.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아이콘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은 1970년대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들며 반복 재현됐고, 그들이 던진 질문은 작품의 성공을 뛰어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모르지만, 그들이 던진 이 질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직도 아침 드라마에선 순수한 서민 가정 출신 여자와 표독스러운 재벌 출신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또 다른 프로그램에선 가난한 나를 버리고 간 여자에게 자신이 거둔 성공을 과시하는 랩이 나온다. 트렌드를 읽는 기업인이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장한몽』의 성공이 아니라 『장한몽』의 클리셰가 거둔 세월을 초월한 성공이다.


클리셰의 본질적인 의미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분명한 것은 부(富)와 사랑 사이의 갈등을 화두로 한 삼각관계가 『장한몽』 이전에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장한몽』 이전에 주가 됐던 질문은 『춘향전』에서처럼 ‘사랑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였다. '돈이냐, 사랑이냐'는 자본주의가 삶의 근본을 바꿔놓은 근대사회에서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이냐, 정신이냐'라는 철학적 질문이 돈과 사랑이라는 대중적 형태로 구체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 클리셰는 근대적 세계의 구조를 따지는 핵심 질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자본주의는 10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의 밑그림을 결정하는 강력한 틀이다. 그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은 자본주의의 결함과 모순을 표현할 수 있는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결국 돈과 사랑을 저울질하는 이 클리셰가 성공한 이유 역시 근대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겪는 중대한 갈등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한몽』이 거둔 성공의 비결은 작품 자체보다는 본질적인 질문을 ‘여기에’ ‘최초로’ 던졌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창조적 클리셰의 힘

지금도 ‘비인간적’인 자본주의가 결정한 세계에서 인간적 삶의 목표와 가치란 어떤 것인가를 묻는 질문은 유효하다. 마치 좀비영화 속 좀비가 자기복제와 증식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은유로 읽히고, 그것이 유효한 질문으로서 클리셰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내딛고 있는 자본주의 비인간적 지점을 묻는 질문들은 장한몽의 클리셰처럼 무게감을 지닌다. 

기업 세계에선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 또한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결함을 짚어내는 표현이다. 이는 기업 또한 자본주의의 결함을 사유할 수 있고, 막강한 클리셰를 던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출처 러쉬 공식 홈페이지
윤리적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친환경적 기업 러쉬(LUSH)를 보자. 러쉬는 동물실험을 통한 상품 개발을 거부하고 동물 대체 실험을 후원하며, 국내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또 환경을 파괴하는 과대포장에 반대해 가능한 한 최소한의 포장만을 하도록 하며, 부득이하게 사용하는 포장 재료의 90%는 재활용된 재료를 활용하고 있다.
출처 블루보틀 공식 트위터
핫플레이스만 골라 지점을 내는 '커피계의 애플' 블루보틀(Blue Bottle)은 빠름을 강조하는 세상 속에서 묵묵히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 한 잔을 내리는 데 15분이 걸리는 대신 최고의 맛과 품질의 커피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기업 가치를 바탕으로 고객 한 명 한 명과의 교감과 소통에 최선을 다하고, 내부 직원들의 복지에도 힘쓰고 있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 환경의 공존을 추구하는 러쉬와 만드는 노동 그 자체로 가치를 되돌리는 블루보틀.익숙지 않은 이들의 방식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비인간적' 자본주의에 '인간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 이 글은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47호의 글 ''돈이냐, 사랑이냐?' 클리셰의 힘' (필자 이경림)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인터비즈 임유진
inter-biz@naver.com

표지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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