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직관리왜 53세 노장은 황제의 명을 어기고 적을 공격했나

왜 53세 노장은 황제의 명을 어기고 적을 공격했나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전쟁사 연구자들이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고 인정하는 전투가 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발칸전쟁(1912~1913)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터키)의 힘이 약해지자 유럽 열강은 어부지리를 취할 셈으로 터키와 국경을 맞댄 발칸국(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가)을 꼬드겼다. 터키를 포함한 주변 강국의 지배에 신음해오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는 자주(自主)와 복수를 원했다. 소국 몬테네그로는 영토 확장의 야심이 있었다. 이들은 반(反) 터키 성격의 발칸동맹을 맺고 1912년 10월, 터키에 선전포고를 했다.


터키 vs. 불가리아, 륄레부르가즈 전투
전쟁의 무대였던 키르크라렐리와 륄레부르가즈 / 출처 구글 지도 캡처 후 수정
대치와 탐색 속에 소규모 조우전(이동 중에 있는 부대가 불의에 적부대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전투행위)이 몇 번 있은 후 전황은 돌연 화약고가 터진 것처럼 치열해졌다. 특히 1912년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벌어진 륄레부르가즈(Lüleburgaz, 이스탄불로부터 서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지역) 전투는 양측의 사상자만 총 4만 2000명에 달하는 격전이었다. 초전의 선봉은 불가리아였다. 불가리아군은 준비되지 않은 터키군을 남으로 밀어내면서 키르클라렐리(Kırklareli)지역까지 진격했다. 10월 29일 양측은 륄레부르가즈에서 다시 맞붙었다. 흑해, 에게해, 마르마라해를 포함한 발칸반도 남부의 주도권이 모두 이 전투에 달려 있었다.

불가리아군의 기세에 터키군은 계속 밀렸다. 불가리아군은 실전 경험에 기반한 우수한 전술을 갖고 있었다. 특히 포병은 정확하고 치명적이었다. 이대로라면 최초 계획처럼 불가리아 제1군이 발칸반도 동쪽에서 내려오면서 측면 포위를 시도할 때, 동시에 불가리아 제3군이 정면을 공격해 터키군을 격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험한 지형과 궂은 날씨로 불가리아 제1군의 남진(南進)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오스만(터키) 군인들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터키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가리아 제3군과 제1군 사이에 발생한 틈을 노렸다. 불가리아군 지휘부는 매우 당황했다. 터키군에 돌파를 허용한다면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있었고, 또한 터키 본토로부터 증원군이 도착한다면 발칸 동맹군 전체가 철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불가리아군 지휘부는 “제3군은 방어로 전환해 현 위치를 고수하고, 제1군은 신속히 측방으로 기동해 터키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터키군의 반격에 맞서 황제의 명을 어기고 공격하다
1차 발칸전쟁 당시 불가리아군의 모습 / 출처 위키피디아
방어 전환 명령을 받은 불가리아 제3군 사령관은 라드코 디미트리예프(Radko Dimitriev) 장군으로, ‘러시아-터키 전쟁(1877∼78)’과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1885)’에 참전했던 53세의 노장이었다. 그는 “이 순간 공세의 템포를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총사령관인 황제의 명을 어기고 터키군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단순히 감으로 맞대응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정면공격을 하는 대신 서쪽으로 주력을 보내 터키군의 측면을 강타하기로 했다. 디미트리예프 장군의 야간 기습은 효과를 발휘했고, 불가리아 제3군은 쉬지 않고 사흘간 터키군을 밀어붙였다.

측면이 노출된 터키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여기에 동쪽으로 내려오던 불가리아 제1군까지 가세한다면 터키군은 양 옆구리를 얻어맞을 것이 분명했다. 터키군은 조금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미트리예프 장군은 이 결정적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첫 번째 기습 공격 이틀 뒤, 이번에는 터키군 한가운데를 돌파했다. 터키군은 패닉에 빠졌다. 순식간에 장병 약 2000명이 포로가 됐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터키군은 600년 만에 발칸반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뼈가 거꾸로 솟아 있는 ‘반골형 인재’
라드코 디미트리예프 장군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고 인정받는 전투에는 어김없이 반골형 지휘관이 등장한다. 반골은 ‘뼈가 거꾸로 솟아 있다’는 뜻으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며, 비판하고 반항하는 기질을 뜻한다. 반골형 지휘관들은 종종 자신의 직책은 물론 목숨까지도 잃게 만들 수 있는 상관의 지시를 거부했다. 대신 자신의 경험과 분석에 근거해 현장에서 놀라운 판단을 내렸다. 

디미트리예프 장군은 상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부대를 움직였다. 방어를 하라고 했지만 정반대로 공격을 했다. 디미트리예프 장군은 지위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잘못된 명령을 따르지도 않았다. 그는 ‘어떻게 싸워서 이길 것인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 이 판단과 행동이 결국 발칸반도에서 터키군을 몰아내는 성과를 가져왔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프란체스카 지노(Francesca Gino)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조직이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반골형 인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골은 모든 일에 삐딱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반골은 조직의 관습과 전례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다. 즉 조직 내에서 반골은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견뎠던 불편을 참지 않고 터뜨리는 사람이다. 늘 하던 대로 의사결정을 하고, 늘 하던 대로 회의를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기업을 이끌어 갈 수 없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반골의 가치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현실에 순응하고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진 조직원들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다. 반골은 조직이 위기를 뚫고 나갈 때 앞에 나설 송곳과도 같은 존재다.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가 수시로 발생하는 현대의 기업 환경에서 반골형 인재는 조직 생존의 핵심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불확실하고 복잡한 미래 환경에 대한 전망은 전쟁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반골형 인재를 찾아 육성함으로써 조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34호
필자 남보람

필자 약력
- (현) 육군본부 육군군사연구소 세계전쟁사 연구원 
- 2011~2016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연구원 
- 2012 워싱턴 미국립문서관리청 파견연구원
- 2013 워싱턴 미 육군군사연구소 교환연구원
- 2016 뉴욕 유엔아카이브 파견연구원

인터비즈 박성지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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