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버럭 정조? 친해지기 위해 아무말이나 막 하다간…

버럭 정조? 친해지기 위해 아무말이나 막 하다간…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사극을 보면 관료들 사이에서 상관이 마구 하대하거나 막말을 하고 상대방은 존대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조선이 신분제 사회이고 위계질서가 엄했으니 상관이 하급자에게 더 세고 무섭게 대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관료들 사이에서 상관이라고 막말은커녕 하대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품계가 낮다고 해도 서로 같은 관료요,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부부 



'움직이는 시한폭탄' 불같은 성격의 정조
정조의 영정 / 출처 KBS 역사 저널 그날 캡처
조선시대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반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임금이 바로 정조다. 정조는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학자적인 군주, 개혁의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성품도 온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상당히 무게감 있고, 백성을 사랑하며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을 것 같다. 그런데 심환지(노론 벽파의 수장)에게 보낸 정조의 편지를 보면 뜻밖의 반전을 알 수 있다. 바로 정조의 가감 없는 성격과 언행이다.
심환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언관직을 거쳐 영의정에 인물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당시 관료중에 물의를 일으킨 자가 있었는데 심환지가 이 사건을 서용보에게 알려주자, 정조는 자기가 서용보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말을 옮겼다고 노발대발했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신뢰하던 서용보에 대해서는 '호로자식'이라는 표현까지 썼으며, 심환지에게도 "경은 이제 머리 허연 늙은이가 되었네 그려. (…) 그런데 매번 그 입을 촉새처럼 놀려서 문젯거리를 만드니, 그대는 정말 생각 없는 꼴통 늙은이구려."라고 써 보냈다. 아무리 임금이지만 나이 많은 정승을 대놓고 깎아내리는 것은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친밀감 표현한다는 핑계로 적나라한 표현 일삼아

원래 조선은 임금이라고 해서 정승과 대신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존경을 표하며 예를 다했다. 그런데 정조는 평소에 '군왕은 친밀하지 않으면 신하를 잃는다. 현명한 신하를 사사로이 대해야만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환지에게 보낸 그 많은 편지도 이런 정조의 생각이 반영된 행위였다. 그만큼 정조는 심환지를 더 친밀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정조는 편지에서 오늘날의 'ㅋㅋ'에 해당하는 '呵呵'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이모티콘처럼 가볍게 '크크크' 웃는 표현을 벌써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조가 보낸 서신에 적힌 웃는 표현 / 출처 KBS 역사 저널 그날 캡처
그런데 정조의 이런 태도를 단순히 성격으로 간주하기에는 좀 어려운 면이 있다. 정조의 직설적인 표현과 욕설뿐만 아니라 신하를 나무라거나 평가하는 모양새를 보면 좀 과한 면이 분명히 보인다. 1797년(정조 21) 7월 인사이동이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이조판서였던 이재찬의 인재발탁이 못미더웠던 정조는 심환지에게 서용보를 통해 이조판서의 인재 천거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심환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던지 정조는 심환지를 두고 "지금 경의 꼴은 진짜 곤장(棍杖) 80대가 알맞겠다. 그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주지 않으니 내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며 질타했다. 정조 스스로 심환지를 친밀한 신하로 생각해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내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이런 직설적인 표현 때문에 왕과 정승이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리더의 기본 덕목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 나라의 임금이 신하들에게 대하는 태도나 언행은 국정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그저 공부만하고 책만 읽었다고 스스로 회고할 정도로 소외돼 있었다. 즉위한 후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재위 7년이 될 때까지 밤에 옷을 갖춰 입고 잤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성장과정이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자의식의 과잉을 낳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발전했다. 정조는 자신이 대학자라고 자신했고, 주변 학자들을 무시하고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확대해석해서 자기가 임금인 동시에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고 자처했다.  

이런 자기중심적 자신감은 이른바 태양증으로 표현되는 성격에도 한몫을 했다. 정조는 스스로를 다혈질적이며 흥분을 잘하고, 조급한 성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화병도 자주 나고 가슴에 심한 통증도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신하들에게도 자신의 병증을 고백했다. 심환지에게는 "나는 태양증이 있어 부딪히면 바로 폭발한다"고 했고, 훗날 아들 순조의 장인이 되는 김조순에게는 "옳지 못한 짓을 보면 바로 화가 치밀어 얼굴과 말에 나타나며, 아무리 억누르려고 애를 써도 태양증 기질을 고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의 불같은 성격은 상대를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비교하는 언행으로 표출됐다. 결코 관료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는 태도였던 것이다.
출처 KBS 역사 저널 그날 캡처
현명한 신하와 사사로이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정조는 개인적인 편지를 통해 이를 실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국가경영에 관한 한 국왕에겐 국왕의 위치가 있고, 신하에겐 신하의 위치가 있는 법이다. 정책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데 개인적인 편지를 이용해 막말을 하고 감정을 다 드러낸 것은 편지를 받는 상대에게 오히려 불신감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조는 뒤늦게 자신이 너무 흥분햇다고 인정하며 심환지에게 받은 편지를 모두 태우고 없애버리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심환지는 한 통도 없애지 않고 모두 보관해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전했다는 게 그 증거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조직이 잘 운영되려면 리더는 가장 기본적으로 언행부터 조심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쉽게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조직에서의 운영은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 존중하는 기반 위에 설 때 서로 신뢰가 쌓여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존중하는 가운데 기업은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84호
필자 노혜경

인터비즈 박근하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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