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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농부의 강철 생활력, '가구 황제'를 키워내다

[인터비즈] 2018년1월27일 한 경영자가 숨졌다.젊은 시절 잡화상 주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직원이 좁은 차 트렁크에 탁자를 집어넣으려다 급기야 해당 탁자 다리를 자르는 모습을 봤다.이를 통해 싸고 편리한‘조립식 가구(flat pack furniture)’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해당 사업을 번창시켜 한때 세계4위 거부(巨富)가 됐다.막대한 재산에도 대중교통과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애용했지만 탈세,알콜 중독,나치 전력,유해성분 논란 등으로 끊임없는 논란도 야기했다.조립식 가구로 세계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1926~2018)이케아(IKEA)창업주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하고 영면한 '가구 황제'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잉그바르 캄프라드/출처 인터 이케아 웹사이트
플랫 팩 가구의 탄생
1950년 대 초 스웨덴 남부 말뫼 출신의 젊은 남성 디자이너 일리스 룬드그렌(Gillis Lundgren·1929~2016)은 곤경에 처했다.신생 가구회사 이케아에서 일하던 그는 자신의 조그만 차로 탁자를 운반하고 싶었다.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좁은 차 트렁크 안에 다리4개가 달린 탁자가 들어가지 않았다.룬드그렌은 투덜댔다. “이 작은 탁자가 얼마나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거야.에라 모르겠다.다리를 잘라 상판 아래 붙여버리자.” 무모함에 가까웠던 한 젊은 디자이너의 번뜩이는 재치가 세계 가구 및 유통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대부호를 탄생시키는 일로 이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가구란‘값비싼 원목을 사용해 부자들만 소유할 수 있는 것,한 번 사면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것,부모님께 물려받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했다.하지만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급격한 도시화 물결,잦은 이사 등으로 값이 싸고 옮기기 쉬우며 가벼운 가구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다리를 자른 탁자’가‘가구 부품을 납작한 상자에 담아 운반하고 이를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가구’를 뜻하는‘플랫 팩(flat pack)가구’로 발전한 이유다.
출처 이케아 홈페이지
플랫 팩 가구는 부피를 대폭 줄여 보관 및 운송을 간편하게 했을 뿐 아니라 가구 크기와 부품을 통일해 제품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게다가 고객이 직접 가구를 조립하도록 하는DIY(Do It Yourself) 방식을 택해 생산비를 대폭 줄였다.이 플랫 팩 가구의 산업화로‘이케아 제국’을 건설한 사람이 캄프라드다.약70년간 이케아를 통치하며“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말까지 남긴 그는 누구일까.


농부의 아들, 17세에 창업 전선에 뛰어들다
캄프라드는1926년3월 스웨덴 알름훌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년의 절반이 눈보라인 척박한 시골 마을 알름홀트 주민들은 생활력과 자립심이 유달리 강했다.소년 캄프라드도 마찬가지였다.그는 어릴 때부터 돈벌이에 남다른 소질을 발휘했다.다섯 살 때부터 성냥,엽서,연필 등을 팔아 돈을 벌었고 불과17세인1943년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집 앞 창고에서 시계와 크리스마스카드를 파는 일종의 잡화점을 열었다.이름은‘이케아(IKEA)’.캄프라드의 이름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그가 유소년기를 보낸 농장 이름 엘름타리드(Elmtaryd),엘름타리드가 소재한 마을 아군나리드(Agunnaryd)의 머리글자인I, K, E, A를 각각 따서 만들었다.
출처 이케아 홈페이지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가구업을 시작한 캄프라드에게 운도 따랐다.당시 스웨덴 정부는‘주택100만 채 건설’정책을 내놔 이케아의 성장을 간접 지원했다.플랫팩 가구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전설적 디자이너 일리스 룬드그렌도 입사했다.

캄프라드는1958년 현재의 이케아 매장의 토대가 된 가구 전용매장을 설립했다.당시만 해도 오로지 가구만 파는 가구 전용매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게다가 다른 매장에서는 소파,식탁,의자 등 개별 가구끼리 모아놓고 전시했지만 이케아 매장은 집 전체 모양을 꾸며놓고 해당 가구가 집 안에서 다른 가구와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보여줬다.고객이 여러 가구가 함께 비치되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게끔 만든 셈이다.

개별 가구의 특성,크기,부품번호를 낱낱이 적어놓은 가구 카탈로그를 만들어 배포한 것도 이케아가 최초였다.이케아 매장에서 핫도그,스웨덴 미트볼 등 머무는 동안 간단한 요기 거리를 싼 가격에 팔아 고객의 체류 시간도 늘렸다.사업은 번창했고 캄프라드는 스웨덴 굴지의 사업가로 부상했다.
출처 이케아 홈페이지
공격적 해외 진출
저렴하고 실용적인 이케아 가구가 인기를 끌자 여타 스웨덴 가구업체들이 이케아를 노골적으로 견제했다.경쟁자들은 이케아에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나 가구 장인을 협박했다.가구업계 전체 박람회를 열 때도 이케아에 공간을 주지 않았다.

국내 확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캄프라드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그는1970년 대 초부터 노르웨이,덴마크 등 이웃 스칸디나비아 국가에 진출했다.이 때 생산 전진기지로 폴란드를 택한 점이 주효했다.스웨덴보다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이 훨씬 싼 폴란드에서 가구를 대량 생산하자 그렇지 않아도 싼 이케아 제품의 가격이 더 저렴해졌다.이케아는 창고와 매장 면적,운송비용을 줄여 제품 가격을 더 내렸고 고객은 더 늘었다. 폴란드 생산기지는 인접국이자 유럽 최강 경제대국인 독일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졌다.이케아는1974년 서독에 진출했고1985년 세계 최대 소매시장인 북미에 진출했다.
출처 Pixabay
미국 소비자들은 북유럽 특유의 깔끔한 디자인을 지닌 이케아 가구에 열광했다. 스칸디나비아의 도시 명칭,강과 산 이름 등을 활용한 이케아 특유의 작명법도 인기를 끌었다.이케아는 책장,소파,커피 테이블 등 작은 가구에는 스웨덴 지명을,침대와 옷장 등 부피가 큰 가구에는 노르웨이 지명을,카페트는 덴마크 지명을 주로 쓴다.사실 이는 캄프라드의 난독증 때문에 탄생했다. 그가 복잡한 가구의 제품 코드를 읽는 것을 어려워한 탓에 이케아 디자이너들은 가구에 사람 이름이나 특정 장소의 이름을 붙여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편하게 만들었다.이케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장의 이름도‘빌리(billy bookcase)’다.

이케아는 미국에서 홈디포,로우스 등 쟁쟁한 토종 유통업체를 누르고‘가구는 이케아에서’라는 공식을 확립시켰다.현재 이케아의 전 세계 매장(411개·2017년11월 기준)중 가장 많은48개 매장이 미국에 있다.해외 생산기지 또한 폴란드에서 중국,방글라데시 등으로 다변화했다.

절세와 탈세 사이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캄프라드는 본사와 거주지를 모두 해외로 옮겼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북유럽 국가는 사회복지가 우수하지만 그만큼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기업과 개인 모두 마찬가지다.스웨덴은1910년부터‘부유세’를 도입하는 등 부자에게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매겼다.이것이 못마땅했던 캄프라드는1976년 거주지를 스위스 로잔 교외의 에팔링주로 바꿨다.이케아 본사 또한 네덜란드 라이덴으로 옮겼다.

캄프라드는1980년 대부터 이케아 지배구조 또한 대대적으로 바꿨다.우선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중부 유럽의 소국 리히텐슈타인 등에 각종 재단과 신탁을 설립했고,이케아의 소유구조를 극도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케아의 공식 소유주는 네덜란드에 등록된 공익재단 스티흐팅 잉카재단으로,이케아 그룹의 지주회사인 잉카홀딩스를 지배한다. 반면 이케아의 상표권,제품 디자인 등의 소유권은 인터 이케아 시스템스라는 별도 회사가 갖고 있다. 한편,캄프라드는 무려32년 전인1986년 이케아 최고경영자(CEO)직을 일찌감치 사퇴했고 이후 회장,고문 등으로 직함을 점점 낮췄다. 그의세 아들은 이케아 프랜차이즈 사업을 관리하는 이카노 그룹의 소유주다. 이카노 그룹,잉카 재단, 잉카 홀딩스,인터 이케아 시스템스 등은 각각 서로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해 꼬리에 꼬리를 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 덕에 캄프라드는 많은 세금을 내지 않고 별다른 견제도 받지 않으면서70년간 이케아라는 거대 회사를 완벽하게 틀어쥘 수 있었다.캄프라드의 뒤에 늘 탈세 논란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잉그라드 캄프라드(오른쪽 두번째)와 그의 세 아들/출처 인터 이케아 홈페이지
게다가 이케아는 아직까지도 비상장 기업이다.워낙 돈을 잘 벌고 유보금도 많다보니 굳이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상장을 하면 투자자,금융당국,시민단체,회계법인 등에 기업의 수익 상황을 낱낱이 보고해야 한다.당연히 감시와 견제도 엄청나다. 캄프라드는 잉카재단 설립 당시 겉으로는“이케아를 발전시키고 브랜드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는 한때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부호 4위에도 올랐다.그의 사망 직후 또 다른 미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캄프라드의 재산이587억 달러(약63조 원·2018년1월 기준)라고 추정했다.반면 스웨덴 경제지베칸스 아파러는 재단 관련 재산 등 캄프라드의 실질 재산을 다 합치면 무려900억 달러(약96조4800억 원)에 달해 그가‘세계 최고 부호’일 것으로 추산한다.

<참고문헌>
-이케아,그 신화와 진실,엘렌 루이스 작,이기홍 옮김,이마고, 2012
-잉그바르 캄프라드 영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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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 하정민 차장(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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