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흥정에선 구매자가 甲이다, 얇은 지갑 흥정으로 불려보자

흥정에선 구매자가 甲이다, 얇은 지갑 흥정으로 불려보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한국이나 미국 등 여러 문화권에서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실랑이는 자연스러운 관행이 아니다. 그래서 가격 흥정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상품에 대해서는 흥정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게 행여 판매자를 난감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고, 흥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며, 어딘지 마음이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장이나 장터에서만 흥정을 해오던 관행이 일반 가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 쇼핑을 할 때도 판매자와 1:1대화를 통해 흥정을 하기도 한다.

2017년 1000명의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Consumer Reports)에 따르면 3분의 2가 넘는 소비자들이 가격 흥정을 시도해 할인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호텔, 핸드폰, 의류, 전자제품군에서 흥정을 시도했을 때 75%가 넘는 흥정 성공률을 보였다. 온라인으로 협상을 시도했을 때도 효과는 뛰어났다. 온라인에서 협상이 가장 효과적이었던 제품군은 전자제품군이었다. 과거 6개월간 온라인가격 흥정을 시도해 TV, 컴퓨터 등 전자 제품 할인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미국인 수는 69%에 달했다. 
구매할 때 협상을 시도해보자. 생각보다 성공확률이 높다 / 출처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캡처
아껴봐야 푼돈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목표를 놓고 협상의 기술을 연마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전 제품 대리점에서 세탁기 가격을 잘 협상한 일을 계기로 직장에서도 중요한 업무 사항을 협상할 때 더 자신감을 갖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임대료, 이동 경비, 사무 용품 등을 협상할 때도 보다 회사에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요즘 상황에서는 가격 협상 시 오히려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유리한 위치일 때가 많다. 제대로 흥정을 해보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다음 5가지 전략을 염두에 두자.



1.당신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가

흥정의 기회는 예기치 못한 때에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무런 또는 별다른 준비 없이 흥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흥정에서는 미리 준비를 해가는 편이 유리하다. 텔레비전이 고장 나 급히 새 TV를 사긴 사야겠는데 제값을 다 주고 사기에는 억울한 생각이 들 때를 가정해보자. 가까운 전자 대리점을 찾기 전에 집이나 차를 산다고 생각했을 때와 동일하게 사전 조사를 해가면 어떨까. 

우선 배트나(BATNA), 즉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할 때 내밀 대안을 정하고 갈 필요가 있다. TV라면 온라인 판매나 TV 수리 등이 배트나의 예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어떤 대안을 취할지를 미리 고민해뒀다면 흥정에서도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배트나를 미리 정해둔다면 협상 상한선, 즉 흥정을 통해 와인 1병, TV 1대, 세탁기 1대를 사는 데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당신이 사고 싶어 하는 TV가 동네 전자 제품 대리점에서는 150만 원, 내일이 마감일인 가전제품 할인 행사를 실시하는 G마켓에서는 12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고 가정하자. 단순 비교를 위해 부가세 및 운송료는 120만 원에 포함됐다고 치자. 대리점을 찾기 전, 당신이 정한 배트나는 G마켓에서 TV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구매 당일에 바로 TV를 가져갈 수 있는 것과 배송 후 제품이 마음이 들지 않아 반송했을 때의 번거로움을 고려해 G마켓보다 10만 원 높은 가격인 130만 원으로 협상 상한선을 정할 수 있다.



2.상대방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가

이제 흥정을 통해 최상의 결과를 찾아내야 할 때다. 이때 어느 선까지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고 싶다면, 하버드대 교수인 디팩 마호트라, 맥스 배저먼이 <협상의 천재>에서 언급했듯, 상대방이 생각하는 하한선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배트나가 뭔지부터 살펴보자. 당신이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는 어떻게 나올까? 대부분의 판매원들이 그렇듯 다른 손님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판매원에게 제품 판매가 얼마나 절실한 상황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매장을 한 차례 둘러보고 지금 이 대리점의 재정 상황이 어떠한가를 점쳐보는 것으로도 짐작을 해볼 수 있다. 대개 영업 실적이 나쁠수록 적극적으로 흥정에 나서기 마련이고, 고객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주기 마련이다.

이 판매원이 얼마나 낮은 가격에 TV를 넘겨줄 것인가를 판단하려면 자동차를 살 때처럼 인터넷 판매가를 조사하고, 해당 매장에서 어떤 식의 가격 할인, 반송, 품질 보증 방침을 도입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라. 심지어 매장에서도 조사가 가능한데,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포장재에 찍힌 제품 출고일을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이 상품이 얼마나 오래 팔리지 않은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다. 매장에서 오래 보관중인 물건일수록 판매원이 흥정에 적극성을 띤다.
출처 LG전자
3.협상의 순서

사전 조사 결과 인근 전자 제품 대리점을 방문해 협상을 한다면 G마켓 가격인 120만 원 선도 엄두를 내볼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협상 가능 범위를 의미하는 조파(ZOPA), 즉 120만 원(대리점 측이 내세울 거라 예상하는 협상 최저선)∼130 만 원(당신이 생각하는 협상 상한선)의 협상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곧 있을 협상에서 되도록 120만 원에 가까운 협상가를 이끌어내는 게 당신의 목표다.

일단 조파를 정했다면, 이제 협상 성공을 위한 수순을 밟아나가야 할 때다.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는 손님이 적은 시간인 개장 또는 폐장 시간에 맞춰 방문할 것을 권한다. 특히 월말이라면 영업사원들이 할당량에 신경을 쓸 시기이니 가히 적기라 할 수 있다. 다른 손님들에게 들릴 만한 목소리로 흥정을 벌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이때 매장 직원들은 다른 손님들이 행여 눈치라도 챌까 마음을 졸인다. 경쟁업체의 가격이자 당신이 설정한 배트나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제시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 또한 하나의 전략이다.

흥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정중하고 솔직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밝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개 가게들은 신용카드 결제에 따른 수수료를 부담하는 만큼, 결제를 현금으로 한다면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살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4.밀고 당기기

원하는 제품 구매의 장단점을 꼼꼼히 제시한 후에도 판매자가 가격 할인 의사를 비치지 않는다면, 이제 본격적인 가격 흥정에 나서야 할 때다. “이번 주에 인터넷에서 TV 할인 행사를 하고 있더군요. 인터넷에서 더 싼 가격에 살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가격선을 맞춰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때 영업사원이 흥정에 나설 태세라면, 그리고 당신도 조파를 확실히 정했다면, 이제 가격을 제시해보자. “G마켓에서는 120만 원에 판매 중이더군요. 제가 현금으로 결제를 할까 하는데 그보다 싼 가격에도 가능한가요?”

자, 이제 흥정이 시작됐다. 양측이 첫 번째 흥정가를 제시했고, 이제 밀고 당기기에 들어간다. TV 흥정에서 대리점이 제시한 첫 번째 제안가는 정찰가 150만 원이다.

절대 120만 원까지는 가격을 낮춰줄 수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하자. “대신 10만 원 낮춰서 140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애초에 당신이 정한 협상 하한선인 130만 원보다는 높은 가격이므로 당신은 다시 한 번 협상에 도전한다.

“오늘 바로 구매를 할 테니 125만 원에 주세요”
가격흥정 중 영업직원의 장황한 설명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점원은 이번에는 대답 대신 제품 설명을 다시 늘어놓기 시작한다. 디팩 마호트라와 맥스 배저먼 교수에 따르면, 노련한 협상가는 어떤 흥정가가 들어왔을 때 바로 대답을 하기보다는 시간을 버는 쪽을 택하는데, 그래야 상대방이 초조함을 느껴 다른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덥석 다른 조건을 제안하고 나서지는 마시라. 약삭빠른 흥정꾼이라면 상대방이 멈칫하다 다른 조건을 제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점원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오히려 잘 된 일일 수 있다. 당신이 ‘난 다른 가게에서 알아보겠소’라는 시늉만 해도 그 점원은 당신을 붙잡을 가능성이 높다.



5.부수적 이익 챙기기

흥정에 관한 잘못된 상식 가운데 하나는 흥정의 대상은 단 하나, 가격뿐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물론 가격만큼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마는, 가격 외에도 배송, 할부, 다른 상품 구매 등이 모두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인 질문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디팩 마호트라와 맥스 배저먼의 표현대로 이른바 ‘부수적 합의’, 즉 다른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협의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TV흥정에서 당신이 제시한 마지막 협상가에 대해 점원이 127만 원 이하로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고 하자. 물론 당신이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협상 범위 안에 드는 금액이다. 또는 130만 원 선에서 합의를 보고 그 대가로 대리점 측에 당신이 쓰던 TV를 처분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인터넷에서보다 매장에서 직접 TV를 구매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원 또는 매니저가 도무지 흥정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방법이 없다. 당신은 최선을 다한 셈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을 나와도 좋다.

* 이 글은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프로그램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에 실린 ‘Master the Art and Science of Haggling’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51호

인터비즈 문현지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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