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CEO 열전: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의 독불장군, 소니에게 밀린 채로 쓸쓸한 퇴장...그래도 제국은 남았다

[CEO 열전: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의 독불장군, 소니에게 밀린 채로 쓸쓸한 퇴장...그래도 제국은 남았다

[인터비즈]

앞의 기사에서 계속...[CEO 열전: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의 위대한 독불장군...작은 화투 회사에서 게임 제국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제국

1990년대 초반 야마우치 히로시가 이끄는 닌텐도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패미컴과 슈퍼패미컴,게임보이용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는 날개 돋친 듯 팔렸으며,이에 대항할 만한 경쟁사도 그다지 없었다.

특히 북미에서는'게임기=닌텐도'로 인식될 정도였으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 하다.특히 서드파티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닌텐도에서 직접 품질 검증하고 출하량까지 지정하는 시스템,그리고 소프트웨어가 담긴 롬 카트리지를 전량 닌텐도에서 위탁 생산하는 구조는 닌텐도에게 있어 높은 로열티 수익을 안겨주는'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하지만 이는 서드파티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불리했으며,차츰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패미컴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혁신적인 시스템이 나중에는 불합리한 관행이 되고 만 것이다.
일본 교토에 위치한 닌텐도 사옥
더욱이,닌텐도가 소프트웨어 매체로 롬 카트리지만 고집하는 것도 서드파티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다.시대는 한층 고화질,고음질의 멀티미디어 게임을 원하고 있었지만 슈퍼패미컴용 롬카트리지의 저장 용량은 불과 수MB남짓에 불과한데다 생산단가도 무척 높았다.여기에 닌텐도에 지불하는 로열티까지 더해지면서 상당수 슈퍼패미컴 게임의 가격은 개당10,000엔을 넘기까지 했다.이는 서드파티 뿐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도 부담이었다.

또한 닌텐도는 서드파티들이 닌텐도가 아닌 경쟁사의 게임기용으로 게임을 출시하는 것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이를 어긴 서드파티에겐 닌텐도용 게임 제작을 허락하지 않거나 원하는 출하 수량을 승인하지 않는 등의 불이익을 가하기도 했다.하지만 당시 닌텐도가 거의 독점 수준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드파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닌텐도의 정책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오만이 부른 판단착오

700MB가량의 고용량을 담을 수 있고 생산단가도 훨씬 저렴한 매체인CD-ROM을 이용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때문에 당시 협력 관계에 있었던 소니(Sony)가 슈퍼패미컴용CD-ROM추가 어댑터를 공동개발하자고 제안했으며,닌텐도의 야마우치 역시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여 제품의 시제품까지 개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야마우치의 생각은 차츰 회의적으로 바뀐다.현재의 롬 카트리지 기반 시스템으로 서드파티들을 통제하며 손쉽게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굳이CD-ROM을 택할 이유가 크진 않았기 때문이다.더욱이,소니에서 향후 출시될 슈퍼패미컴용CD-ROM소프트웨어에 대한 라이선스 권리까지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간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야마우치는 판단했다.결국1991년6월,닌텐도는 소니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대신 필립스와 계약을 맺겠다고 발표했다.
1994년 소니가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 SCPH-5001 / 출처 위키미디어
닌텐도의 이런 결정에 소니는 당연히 크게 분노했으며,계획을 바꿔 닌텐도를 이길 수 있는 자사의 독자적인CD-ROM게임기를 개발하기로 한다.그리고 이는 소니가1994년'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을 출시하면서 현실화된다.플레이스테이션은CD-ROM을 탑재한 것 외에 당시로선 상당한 품질의3D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고성능32비트CPU를 탑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마우치는 소니의 이런 움직임이 닌텐도의 위상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도 그럴 것이 소니는 게임 시장에선 초보자나 다름없는데다 자체적으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능력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소프트웨어의 품질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게임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서드파티들은 여전히 닌텐도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소니 플레이스이션은 닌텐도 뿐 아니라,당시 업계2인자였던 세가에서 개발한32비트CD-ROM게임기인 새턴(Saturn)과도 경쟁을 해야 했으며,닌텐도 내부에선 이미32비트를 능가하는64비트급 게임기인'닌텐도64'를 개발하고 있었다.닌텐도64역시 롬 카트리지 기반 게임기였지만,연산능력이 플레이스테이션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출시 시기가 늦더라도 나중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하지만 시장은 점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흘러갔다.소니는 최대한 많은 서드파티를 끌어들이기 위해 닌텐도보다 낮은 로열티를 제시했으며,매체 생산단가가 낮은CD-ROM의 특성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용 소프트웨어는 슈퍼패미컴 소프트웨어의 절반 수준에 출시가 가능했다.

더욱이, CD-ROM은 롬 카트리지보다 빠르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장점도 있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출시 시기나 수량도 손쉽게 조정이 가능했다.소니는 손쉽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각종 도구를 개발해 게임 개발사들에게 강하게 어필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그 동안 닌텐도의 독점에 불만을 품었던 소프트웨어 제작사들이 하나 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서드파티로 가입하기 시작했다.특히 대형 업체인 남코(Namco)는'철권', '릿지레이서'와 같은 고품질의3D그래픽 게임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하여 대중들에게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더욱이, CD-ROM기반의 고용량 덕분에 기존 롬 카트리지 기반의 게임기에선 구현할 수 없던 고품질 동영상 및 음성을 게임에 삽입할 수 있게 된 점 역시 게임 마니아들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1996년1월에 일어났다.일본의 국민 게임 중 하나인'파이널판타지(Final Fantasy)'의 개발사인 스퀘어(Square)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을 출시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그 동안 스퀘어는 오직 닌텐도 게임기용 게임만 출시하던 회사였으며,최신작인'파이널판타지7역시 닌텐도64용으로 출시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다.하지만 스퀘어가 원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게임을 담기에 롬 카트리지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닌텐도를 떠나 소니의 품에 안겼다.

방대한 용량의 매체에 낮은 소프트웨어 가격,우수한 개발환경에 유리한 라이선스 조건,여기에 강력한 서드파티까지 갖추게 된 소니의 앞길에 더 이상 장애물은 없었다.플레이스테이션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고,당초의 경쟁자였던 세가의 새턴을 압도함과 동시에 전체 게임기 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 출시된 닌텐도64
닌텐도는1996년6월에 슈퍼패미컴의 후속 기종인 닌텐도64를 출시했으나,닌텐도에서 자체 개발한'슈퍼마리오64'등의 일부 게임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동시 출시작이 없었으며,그나마 소프트웨어의 수 자체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게임기 자체의 성능은 높았을지 몰라도 여전히 용량이 적은 롬 카트리지를 이용한 탓에 그 성능을 원활하게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특히 당시 게이머들이 원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게임 개발사들은 아쉬움을 표했다.결국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을 소니에게 내 줄 수 밖에 없었다.

악재는 이것 뿐 만이 아니었다.닌텐도는 게임보이의 뒤를 이을 휴대용 게임기로 가상현실(VR)기술을 적용한'버추얼보이'를1995년에 내놓았다.하지만 버추얼보이는 시장의 외면을 받아 불과 출시1년여 만에 단종되기에 이른다.가상현실 기술은 아직 시장에서 받아들이기에 생소한 것이었으며,휴대용을 표방하면서도 제품의 덩치가 너무 크고 즐기기 불편하다는 것이 단점이었다.버추얼보이의 개발 책임자였던 요코이 군페이는 실패에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영웅의 퇴장과 새로운 희망

시종일관 찬사만 받던 야마우치 히로시의 리더십이 고집스럽고 독선적이라는 혹평으로 바뀐 것도 이 때 즈음부터다.이후,닌텐도는 닌텐도64의 후속 모델인 게임큐브(Game Cube, 2001년)을 출시하는 등,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전세를 뒤집지 못하고 소니 우세의 시장구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하지만 닌텐도에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비록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긴 했지만 여전히'슈퍼마리오', '포켓몬스터'등으로 대표되는 유력한 지적재산권을 다수 보유한데다 미야모토 시게루로 대표되는 우수한 인재도 많이 있었다.

야마우치 역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후진 양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특히 그는 닌텐도의 하청업체였던HAL연구소에 근무하던'이와타 사토루(岩田聡, Satoru Iwata, 1959~2015)'의 능력을 유심히 보았다.그리고2000년부터 그를 닌텐도에 입사시켜 자신의 후계자로 키웠다.

그리고2002년,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의 사장직을 아와타 사토루에게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그는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사장에게 집중되어 있던 닌텐도의 의사결정권을 분산,집단 지도 체제를 구축했다.다소 경직되어있던 닌텐도의 사내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신임 사장이 된 이와타에게는 절대로 다른 업종에 진출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젊은 시절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했다가 큰 시련을 겪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였다.이후,야마우치는 여생을 보내다가2013년9월19일 향년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야마우치의 뒤를 이어 닌텐도의 사장에 오른 이와타 사토루(1959~2015)
이와타 사장 취임 이후,닌텐도는 게임기의 성능 보다는 놀이의 본질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인다. 2개의 화면 및 터치스크린을 갖춘 휴대용 게임기인'닌텐도DS(2004)',몸을 직접 움직이며 즐기는 체감형 게임기인'위(Wii, 2006년)등이 이와타 사장 시절의 대표작이다.다만,안타깝게도 그는2015년에 병사하여 키미시마 타츠미(1960~)가 닌텐도 사장 자리를 이어받는다.

닌텐도DS와 위는 낮은 하드웨어 성능 탓에 출시 초기엔 기존의 게임 마니아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하지만 기기의 특성을 이용,다른 게임기에선 흉내 낼 수 없는 이색적이고 참신한 게임이 다수 출시되어 예전에는 게임을 즐기지 않던 노인이나 여성 소비자들까지 사로잡았다.이에 힘입어 닌텐도DS는 총1억5,402만대,위는 총1억163만대의 글로벌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대히트를 거두며 닌텐도를 다시 시장의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독불장군' 야마우치가 남긴 위대한 유산

야마우치 히로시는 과감한 결단력과 두둑한 배짱을 발휘하며 작은 화투 회사를 세계적인 게임 업체로 성장시켰다.이것 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너무나 큰 성공을 거둔 탓인지 만년에는 독불장군 소리를 들었으며,몇 번의 판단 착오로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하지만 그가 남긴 빛나는 유산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었으며,후계자들은 이를 최대한 활용해 다시 회사를 일으키게 된다.게임이라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그의 이름과 족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IT동아는 모든 독자에게 유용할 IT트렌드와 비즈니스 지식을 전하는 온라인 IT저널입니다.

인터비즈 박성지 정리
inter-biz@naver.com

*사진은 닌텐도 제공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