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직장생활 학습백과 Why] 여자의 적은 여자? 언니는 어쩌다 여왕벌이 됐나

[직장생활 학습백과 Why] 여자의 적은 여자? 언니는 어쩌다 여왕벌이 됐나

선배를 보았다
외국계 항공사 신입 승무원 아영 씨는 직장 선배에게 손으로 하트 뿅뿅을 만들어 보였다가 악마를 보았다. 그녀는 평소 직속 선배이자 승무원 5년차 현주 씨를 보며 존경하고 있었다. 비행기 내 수납공간에서 승객들이 요구하는 물건을 쏙쏙 찾아주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던 것. 한 번은 승객이 포커 카드를 요구하자 당황한 아영 씨는 현주 씨부터 찾아갔다. 현주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찾아 꺼내 주었다. 

"역시 짬은 무시할 수가 없네요 선배님"
아영 씨가 하트 뿅뿅을 날린 것은 어디까지나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그게 현주 씨를 불쾌하게 할 줄은 몰랐지. 승무원은 말끝에 다나까 붙이는 거 모르세요? 그리고 어떻게 짬이라는 속된 표현을 선배한테 그렇게 쉽게 쓰나요? 현주 씨의 날선 훈계. 그녀는 평소 아영 씨가 서클렌즈를 끼고 다니는 것도 못마땅하다며 불을 뿜는다. 
"제가 서클렌즈 낀 건 어떻게 아셨어요? 선배님. 역시 짬은 무시할 수가.... 죄송합니다 ㅠㅠ" 
혼이 난 아영 씨는 서럽다. 그녀는 현주 씨가 직장 선배이기 이전에 듬직한 언니처럼 여겨져 살갑게 군 것인데. 실수를 해도 언니처럼 따뜻하게 보듬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깨져버린다...현주 씨는 황당하다.직장생활이 장난인가. 언니와 선배는 다르다. 그게 그녀가 직장을 다니면서 배운 교훈이다. 

직속 여자 선배는 호랭이?

이른바 '여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근로자의 고충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같은 여성 상사와 근무 경험이다. "저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더 무섭습니다"와 같은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이스한 여자 상사와의 근무 경험을 풀어놓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논쟁이 벌어질 경우 '여자의 적은 여자입니다'(일명 '여적여')로 정리되기 일쑤다. 그래서 궁금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저 질문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 연구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 정한나 연구위원의 올 초 공개한 논문의 제목('여자의 적은 여자인가?:상사 성별이 여성 근로자의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기도 하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여성 근로자의 스트레스에 같은 여성근로자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직속 상사가 여성이고 사내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여성 근로자의 직장 내 스트레스도 높게 나타났다.
직속 상사 성별이 여성인 경우, 여성 근로자의 직장 내 스트레스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5% 높았다. 심지어 승진 확률도 떨어졌다. 여성 직장 상사를 모신 여성 근로자는 직급별 승진 확률은 사원 및 대리급은 20.1%, 과장급은 3.3%, 차장급 이상은 1.4%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많은 직장일수록 여성 근로자의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점도 눈길을 끈다. 여성 근로자 스트레스가 사내에 여성 비율이 25∼50% 미만인 곳에선 1.2%, 50∼75% 미만인 사업장에서는 5.8%로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결과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7년부터 100명 이상 기업에 근무하는 대리급 이상 여성 2361명과 남성 1017명을 추적 조사한 자료를 다시 분석해 얻은 것이다. 
여자 선배가 여자 부하에게 '호랭이'인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경력이 많은 여성은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강한 조직과 직장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여성 근로자로 오히려 같은 동성 동료에 대한 인정기준이 높아졌을 것으로 풀이한다. 여성은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뚫어 내는 과정에서 경직된 조직문화를 철자하게 내면화했다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같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굴고 이게 곧 후배들의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는 결론이다. 
우리 선배님 사진. 오늘 따라 선배님의 심기가 유독 불편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다.

아니, 그럼 항공기 승무원이나 간호사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고 스트레스도 심한 직종인데 '갈굼'(간호사들은 특유의 갈굼문화를 태움이라는 은어로 표현할 정도로 직장내 괴롭힘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이 일반화된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항공사 승무원으로 근무중인 박모 씨(25)는 "여자들이 많지만, 승무원은 군인에 비유할 정도로 군기가 강한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정한나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아직 심층연구가 이뤄지진 않았다면서도 "여성 리더십과 남성 리더십의 장점이 뒤섞인 조직일수록 부하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했다. 한쪽 성별 리더십이 강해지면, 조직문화가 획일화되고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여초나 남초 직장은 성별 역할을 강조하며 고유의 문화를 강하게 드러나는 직업군일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신입직원이 따라야 하는 전통과 문화가 뚜렷하게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여초 뿐만 아니라 남초도 문제가 된다. 남초 또한 군대문화로 흐르기 십상이니 조화로운 리더십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직속 여자 선배는 여왕벌?

승진 때 여성 임원이 여자 후배 앞길 막는다는 결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논문은 '여왕벌 신드롬'으로 해석한다. 여왕벌 신드롬은 1973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이 회사 내 여성들을 주제로 한 논문에서 처음 쓴 용어다. 여왕벌이 벌집에서 유일한 권력자로, 능력 있는 여성은 나 하나로 족하다는 생각으로 같은 여성을 견제한다는 설명이다.
동아일보DB
해당 논문도 이와 같은 해석을 담았다. 여성이 적은 조직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이 많은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상위직급의 경우엔 여성의 입지가 줄어드는 현상이 뚜렷하다 보니 견제심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 직장인들끼리 제한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심리가 작용하다보니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설명이다. 

다만여왕벌 신드롬은 논란이 있는 개념이다. 여성 대표가 있는 조직의 임직원은 여성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반박하는 자료도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논문 또한 대표가 여성 친화적인 생각을 가지고,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조직일수록 여성 근로자의 스트레스가 유의미하게 낮아진다는 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여성이 많은 조직이라고 여성 친화적인 조직은 아니다. 



심리학 이론으로 본 '여적여'

남여조직 모두 똑같이 군대문화가 적용되더라도 '진짜 사나이'들이 모여 있는 병영에선 아무리 갈등이 벌어져도 '남적남'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 듯하다. 남성들에게 군대 시절 갈굼을 시전한 고참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십중팔구 "김 병장, X새끼"라는 반응이 나오지. 역시 남자들이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여성들간의 갈등만 유독 여적여로 표현하는 데엔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바로 역할일치이론이다. 이는 사회에서 기대하는 전형적인 역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러지 않은 사람은 싫어한다는 개념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이번 연구도 '역할일치이론'으로 여적여를 풀이하고 있다.
같은 선배라고 하더라도 여성과 남성에 대한 기대감이 다르다는 게 역할일치이론이다. 그러나 실제론 직장생활에서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이들의 성향은 닮아지는 경향이 있다. 욕하면서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여성 리더에 대한 기대감은 결단력이나 빠른 판단 이외에도 포용력 등의 덕목을 함께 요구받는다. 여성 리더도 괴롭다. 동아일보DB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터리스 휴스턴이 쓴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김명신 옮김/문예출판사, 2017)에 따르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성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제의를 거절하고, 일부나 대다수의 사람이 불쾌하게 여길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등 관리자처럼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반면 여성에게는 전형적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보살피고, 동정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가정 역할에서 비롯한 사고방식이다.  

역할일치이론에 따르면, 남여에 대한 이러한 기존 인식 때문에 똑같이 군대놀이를 하더라도여성의 행동에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 성별 고정관념이 강하고, 역할의 경계를 강하게 지우는 사회일수록 역할불일치에 따른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숨막히는 사내정치, 일방적인 상하관계, 삶과 일의 조화를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경직된 조직문화는 특정성별의 문제만도 아니고 직장인 모두의 고충(심지어 그것을 잘하는 이들조차도)일 수밖에 없다. 여적여 논란 속엔 진짜 문제가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출처 미표기 사진은 게티이미지뱅크)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