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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개혁 이끈 '고모리 시게타카'의 독재자식 리더십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올해 초 일본 후지필름 홀딩스는 제록스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복사기의 대명사로 불리며 10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온 제록스가 ‘페이퍼리스(paperless)’ 트렌드를 넘어서지 못하고 함께 합작사 ‘후지제록스’를 세운 후지필름에 지분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제록스 일부 주주들의 반발로 결국 합병은 무산됐지만, 다시 한번 후지필름의 저력이 확인됐다. 필름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며 코닥이 파산 보호 신청을 하고, 제록스가 시류에 밀려 뒤쳐지는 동안 후지필름은 과감한 개혁을 통해 새로운 주력사업을 창출해냈다. 이러한 개혁은 '오너십'을 가지고 후지필름을 이끈 고모리 시게타카 회장 겸 CEO 덕분에 가능했다. 


“경영자는 우수한 독재자여야 한다”
고로미 시게타카 후지필름 회장 겸 CEO. 출처 후지필름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79) 회장은 평사원으로 후지필름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후지필름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으로 더 유명하다. 2003년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다음해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제 2의 창사’를 선언하며 필름 유통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필름 사업을 과감하게 쳐낸 후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적 구조조정도 추진했다. 그리고 화장품, 의료, 디스플레이 등 성장동력 발굴에 나섰다. 
 
내부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모리 회장은 기업 경영을 민주주의 방식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방식으로 기업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되면 평범한 방식만 결과로 내놓을 뿐이란 것이다. 대신 “경영자는 우수한 독재자여야 하며, 자신의 결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모리 회장은 CEO가 된 이후 자신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이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생각했다고 한다. 인간인 그는 4가지 프로세스를 밟아가며 개혁에 임했다. 
 

1)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2) 앞으로 어떻게 할지 구상해야 한다. 
3) 개혁의 내용을 임직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4) 실행해야 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그는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했다. 고모리 회장은 사장이었던 2000년부터 컬러 필름 수요가 감소세로 바뀐다는 보고를 받았다. 예측 카메라 출하 대수, 출생자 수, 여행자 수 등을 토대로 한 예측과 현장 담당자 모니터링 결과를 종합해 그는 필름 사업이 위기라는 것은 직감했다. 하지만 당시엔 아직 필름이 잘 나가고 있어 다른 임원들은 부정적 전망을 외면했다. 후지필름은 세계 컬러 필름 시장에서 2위, 일본에선 70%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출처 후지필름
최종 결정권자가 된 그는 바로 ‘파괴와 창조’에 착수했다. 먼저 전 세계에 분포된 필름 유통 관련 조직을 통폐합해 구조를 개선했다. 특판을 직판체제로 바꾸면서 약 2500억 엔을 투입했지만, 구조조정 시기가 늦었더라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사업 재편이 이뤄졌지만, 디지털카메라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필름 수요가 빠르게 줄자 개혁에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외 사진관련 임직원 1만5000명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5000명을 줄였다. 
 
구조조정에 대해 고모리 회장은 “나는 회사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대처해서 후지필름의 본업은 소멸했지만 후지필름이라는 회사는 소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동력 발굴에도 매진했다. 필름 제조 기술을 응용해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것. 고모리 회장은 필름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콜라겐’이라는 점에 착안해 피부에 적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사진 변색을 막는 항산화 성분 연구도 피부 노화 억제 연구로 확장됐다. 그 결과 2007년 9월 ‘아스타리프트’라는 안티에이징 화장품이 탄생했다. 이후 의약품, 재생 제품 등 생명과학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후지필름 화장품 '아스타리프트'(좌)와 헬스케어 사업 분야 소개. 출처 롯데 블로그 및 후지필름
더불어 액정 패널에 사용되는 편광판을 보호하는 TAC(Tri-acetyl Cellulose)필름을 비롯해 플랫패널 디스플레이 재료를 만드는 사업도 확대해 주력사업으로 삼았다. 현재 후지필름 제품이 전 세계 TAC필름 시장에서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고모리 회장은 후지필름이 업종 전환에 성공한 게 개혁의 4단계 수순을 올바르게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리더가 잘못된 결단을 내리면 조직은 타격을 받는다. 그는 모든 결단을 틀리지 않게 내리겠다는 각오로 매사 임했다. 경영자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결정을 무작정 미루기보다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성공하는 확률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한 방향으로 전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결정하면 철두철미하고 빠른 속도로 진행해야 한다 그게 바로 그의 개혁론이다. 


오너 의식을 가진 전문경영인

전문경영인은 구조 개혁에 소극적이기 쉽다. 당장 실적을 내지 않으면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기 때문에 눈 앞의 실적에만 매몰되기 십상이다. 고모리 회장은 전문경영인이면서도 오너 의식이 강하다. 그는 회사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본인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모리 회장도 처음부터 오너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입사 3년 차, 자신이 담당했던 필름베이스 사업이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기술 과장과 고객들을 수차례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며 해당 제품의 새로운 용도를 발굴했고, 결국 사업 철수를 중단시켰다. 6년 차 때 팀 리더로 발탁된 뒤 그는 오너십을 갖게 됐다고 회고한다. 당시 인쇄 재료를 담당했는데, 제품 품질 때문에 매출이 줄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에 그는 사장에게 공장과 연구소에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이후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경험들이 그가 오너십을 갖고 일하게 했고,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고모리 회장은 “오너십을 가지면 매사 열심히 생각하고, 결국 창의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생각과 경험이 쌓이면 결국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후지필름은 주력사업 전환에 성공했지만 완전하진 않다. 신규 사업이 과거 필름사업처럼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진 못하고 있다. 주력사업 집중 구조를 분산 구조로 전화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액정재료 사업이나 의약품, 화장품 사업은 수명이 짧고 리스크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필름이 과거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대담한 개혁을 추진해 주력사업 사양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변혁의 DNA를 갖게 됐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58호
필자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자문위원

인터비즈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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