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저녁있는 삶은 늘었지만… 업무성과 부담에 “일 싸들고 집으로”

저녁있는 삶은 늘었지만… 업무성과 부담에 “일 싸들고 집으로”

주52시간제 한달… 달라진 직장풍경
#1. “오빠 정말 불쌍하다. 퇴근했는데 이게 뭐야….”

지난달 30일 오후 7시경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커피숍에서 20대 후반 여성이 맞은편에 앉은 남자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셔츠와 정장 차림의 이 남성은 퇴근 후 업무용 PC의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자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노트북으로 문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성은 “주 52시간 근무제는 무슨…”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2. 쿠팡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홍모 씨(45).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뒤에도 웹사이트 개편 등으로 바쁜 시기에 야근을 하는 건 예전과 똑같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덕에 근로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됐다. 홍 씨는 “야근을 하고 나면 반차가 생기기 때문에 주말 앞뒤로 붙이면 사흘 이상 연휴가 될 수도 있어 나들이를 떠나기 편해졌다”고 말했다. 

7월 1일 300명 이상 기업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상당수 근로자들은 “과로에서 탈출했다”며 반기지만 일부에선 퇴근 후 커피숍을 전전하면서 ‘몰래 야근’을 한다는 탄식도 들린다. 동아일보는 직장인 20명에게 주 52시간제의 본격적인 시행 이후 직장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들어봤다.


○ 업무 집중도 높아졌지만 성과 부담도 커져
대기업 사무실이 몰린 서울 중구와 강남구 일대의 커피숍은 한 달 새 풍경이 확 달라졌다. 올해 초만 해도 업무 미팅을 하는 인근 회사원과 외부 인사로 평일 오후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 낮에는 한가해졌다.  

AIA생명에 다니는 김모 씨(42)는 “회사가 야근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후 2∼4시를 각자 자리를 지키는 ‘업무 집중시간’으로 정했다”며 “이 시간엔 인근 커피숍에서 회의를 하는 것도 자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후 6시가 넘은 커피숍엔 노트북 전원을 연결할 콘센트를 찾는 회사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업무량은 그대로지만 정시 퇴근 압박 때문에 커피숍으로 이동해 야근을 하는 이른바 ‘근로시간의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모 씨(26·H그룹)는 “일과 내에 처리하지 못한 일을 종종 집으로 싸들고 간다”고 했다. 업무 성과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일하는 장소만 바뀐 ‘비자발적 재택근무’가 이뤄지는 것이다. 


○ “저녁 있는 삶이 생겼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에 맞게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된 근로자들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해졌다. 

중견 제약회사에 다니는 장모 씨(29·여)는 지난달 초 집 근처 체육관에 수영 강습을 등록하려다가 수강 정원이 이미 마감됐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의 한 콘텐츠 제작업체에서 일하는 홍모 씨(26·여)는 서울로 돌아오는 퇴근 버스에서 큰 변화를 느꼈다. 오후 6시 반경이 돼야 가득 차곤 했던 버스는 이제 6시만 되면 빈자리가 없다. 

불필요한 업무를 ‘다이어트’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김모 씨(32)가 일하는 KB국민은행에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긴 업무 공백의 일부를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메우고 있다. 그날의 영업 실적을 직원이 일일이 세지 않아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시스템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후 7시가 넘으면 업무용 PC가 자동으로 꺼지고,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연장근로가 불가피하면 그 다음 달에 몰아서 쉬기로 했다. 대한적십자사 직원 A 씨(27·여)도 수개월 전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비해 쓸데없는 서류 작업 등을 조사해 없앤 뒤 연장근로가 줄었다.  


○ “흡연, 티타임도 근로시간 아닌가요” 현장 혼란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구분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고용노동부는 흡연, 티타임이 근로시간에 해당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각 회사의 지침이 엇갈려 근로자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이모 씨(27·삼성전자)는 “업무 공간이 전부 금연구역이라서 담배를 피우려면 회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출입카드 기록이 남으니 당분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보험사에서 근무하는 고모 씨(27·여)는 “회식은 근무가 아니라는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번개 회식’이 더 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달라진 제도에 맞춰 직장 문화도 차근차근 바꿔야 한다는 게 직장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조소진 인턴기자 고려대 북한학과 4학년
찜하기이글을 다시 읽고 싶다면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