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5000억 매출 국산 게임, 전세계 평정한 비밀 전략

5000억 매출 국산 게임, 전세계 평정한 비밀 전략

이 게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2016년 3월, 중견 게임사 블루홀 이사진은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흥행이 불투명한 기획안을 승인한다. 장병규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4개월 동안 기획서를 검토한 후였다.
‘배틀그라운드’는 최대 100명의 이용자가 고립된 섬에 들어가 최후의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다. 섬에 있는 각종 무기와 차량 등을 활용할 수 있으며 잘 싸우는 것만큼 잘 숨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구역이 좁아지며 경쟁은 치열해져 간다.

블루홀 자회사 블루홀지노게임즈(현 펍지)의 김창한 프로듀서(현 펍지 대표)가 제안한 이 기획안은 국내 게임업계 흥행공식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대세인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었고 유행이 한참 지난 총싸움 게임이었다. 유료화 전략이랄 것도 따로 없었다. 그저 게임을 많이 파는 것 외엔 대안이 없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 기획안을 승인한 장 의장도 흥행 가능성에 대해선 갸웃했다. 그는 “매출 목표치가 40만 장이었다. 농담 삼아 200만 장 팔면 프로듀서에게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200만 장이면 국내 최고 히트작 수준의 판매량이다.아무도 이 게임에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장 의장이 농담을 한 것이다.


8개월 만에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 추월한 ‘배틀그라운드’
200만 장은 정말로 농담이 됐다. 2017년 3월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Playerunknown’s Battlegrounds, 이하 ‘배틀그라운드’)란 이름으로 출시된 이 게임은 11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2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참고로 국민게임으로 불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출시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전 세계에서 총 1100만 장 팔렸다.배틀그라운드는 불과 8개월 만에 스타크래프트 10여 년의 성과를 훨씬 뛰어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심지어 정식판도 아닌 베타 버전인데 그랬다.

회사 측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2017년 11월 말까지 누적 매출액은 약 5000억 원대, 그중 약 95%가 해외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시접속자수는 250만∼300만 명에 이른다. 배틀그라운드는 2018년 1월 9일 오전 기준 2782만 장까지 판매됐으니 최근 한 달 사이 약 682만 장 증가한 셈이다. 국내 게임산업 사상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인기를 끈 작품은 없었다. 정식 출시도 하기 전에 신화가 된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성공요인 ①영화에서 차용한 ‘서바이벌’ 콘셉트
김창한 배틀그라운드 기획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해 9월 펍지의 대표가 됐다

대부분의 총싸움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2개의 팀으로 진영을 나눠 전투를 벌이는 형태다. 캐릭터가 죽으면 부활해서 상대편으로 돌격하는 것을 무한 반복한다. 단순반복적인 총싸움에 질린 이용자가 많았고, 국내에서 해당 장르에 대한 인기는 시들해졌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 전체를 보면 여전히 이런 종류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김창한 프로듀서는전 세계 게이머들을 사로잡기 위해배틀그라운드가 여느 총싸움 게임과는 차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존의 총싸움 게임 팬층을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짜기로 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여러 명이 게임에 참여해 단 한 명만 살아남는 이른바 ‘배틀로얄’ 방식이었다. 쉽게 말해 서바이벌 형식이다. 『배틀로얄』은 1999년 일본 작가 다카미 코순이 발표한 소설로,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인기를 누렸다. 이제는 ‘고립된 장소에서 다수의 인원이 무작위로 싸우며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쓰인다. 인기 영화 ‘헝거게임(2012)’ 역시 이런 형식이다.

김 프로듀서는 이 배틀로얄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대규모 인원이 함께 즐기는 서바이벌 게임을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조건 상대방을 많이 죽이고 전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총싸움 게임과는 차별화될 거라고 봤다.
2007년 창립한 블루홀의 기업가치는 2017년 초 2074억 원에서 11월에는 약 5조 원까지 치솟았다 /출처 블루홀 홈페이지
김창한 프로듀서는 기획안을 들고 모회사인 블루홀을 찾아갔다. “핵심 콘셉트가 분명한 만큼 복잡한 게임 설계가 필요 없다. 1년이면 개발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브렌던 그린이(Brendan Greene)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개발자가 만든 기존 게임들의 배틀로얄 모드가 인기를 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블루홀의 장병규 의장은 과연 흥행 가능성이 있는지, 예산은 얼마나 쓸 건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그가 보기에 김 프로듀서와 개발팀이 가져온 제안은 너무 극단적이고 세부 사항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는 “핵심 콘셉트만 가지고 덤벼든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거칠다. 브렌던 그린을 직접 데려와서 함께 개발하지 않는 한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고 김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브렌던 그린을 데려오면 게임 기획안을 승인해 주겠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브렌던 그린. 게임 타이틀에 들어간 ‘플레이어언노운(playerunknown)이 바로 그의 게임 아이디다
장 의장은 브렌던 그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취지로반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 정말로 데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김 프로듀서는 그 말을 듣고 브렌던 그린을 찾아 나섰다. 소셜미디어에서 ‘플레이어언노운(playerunknown)’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브렌던 그린의 e메일 주소를 찾아내 함께 게임을 만들자고 제안해 승낙을 받았다. 장병규 의장은 이 정도 판을 짜온 것에 대해 존중하는 의미를 담아 기획안을 승인한다. 

개발은 2016년 3월에 시작했다. 초기 개발진은 20명이었고 1년 내 론칭이 목표였다. 이듬해 3월 얼리엑세스 버전이 출시될 무렵에는 36명으로 불어났다. 이 중 상당수는 외국인이었고 각자 자국에서 근무하며 영상회의로 개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신 국가는 12개국이었다. 개발자는 주로 한국과 북미에서 일했고, 디자인은 스페인, 체코, 우크라이나 등 유럽 쪽에서 힘을 더했다.

이런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게임 개발에 착수할 당시만 하더라도 총싸움 게임을 만들 국내 개발자 인력이 부족했다. 우수 개발자들이 대부분 모바일 분야로 넘어간 뒤였기 때문이다.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은 외국 게임 관련 커뮤니티 등을 수소문해 적임자를 채용했다. 이들은 온라인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을 활용해 영어로 소통했다.
게임업계에선 흔히 ‘일본식 RPG’라든지 ‘미국식 액션’이라는 표현을 쓴다. 모든 게임은 그 개발사의 소재지에 따라 지역색을 띠기 마련이다. 그 나라 디자이너의 작화풍이 고스란히 녹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배틀그라운드는 글로벌 협업을 거치면서 특정 지역색이 옅어졌다. 이는 한편으론 어느 지역에서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보자. 게임의 기본 골격은 브렌던 그린이 그린 스케치와 위성사진 등을 바탕으로 구상했다. 건물과 구조물 등 세부 디자인 사항은 디자이너 각자가 자신이 사는 동네 사진을 가져와 이를 취합해 참고해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아티스트가 찍어온 동네 사진을 참고해 스페인 출신 그래픽 아티스트가 지도의 세부를 채워나가는 식이다.


성공요인 ③글로벌 플랫폼 활용해 세계 시장 동시 공략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이 예상하는 손익분기점은 10만 장이었다. 이들은 국내에선 이만한 수요가 없다고 보고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일반적으로 한국 회사들이 만드는 게임은 국내 시장에 먼저 선보인 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해외 유통사와 판권계약을 맺고 여러 나라에 순차적으로 진출한다. 물론 직접 유통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적인 확산은 어려운 구조다.
온라인 게임 디지털 플랫폼 ‘스팀’ 홈페이지 캡처 /출처 스팀 홈페이지
배틀그라운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스팀(Steam)’이라는 온라인 게임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글로벌 시장에 동시에 게임을 론칭했다. 스팀은 2003년 문을 연 글로벌 온라인 게임마켓으로 현재 237개국 24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소비자는 신용카드로 간편하게 결제(배틀그라운드의 경우 3만2000원)해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2017년 말 스팀에 등록된 이용자는 1억2500만 명이고 매월 약 6700만 명이 접속한다. 상당한 규모의 잠재고객을 확보할 수 있고, 전 세계에 동시에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판매가의 30%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 부담이 있지만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은 스팀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총싸움 게임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과감하게 마케팅 활동을 벌일 수는 없었다. 게임의 재미 하나만을 믿고 글로벌 수요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총싸움 게임에 대한 수요, 특히 배틀로얄 장르에 대한 수요는 세계 곳곳에 분산돼 있으니 이를 잡기 위해서는 스팀이라는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이 꼭 필요하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스팀에서의 출시는 신의 한 수였다. 스팀은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게임을 미리 해볼 수 있게 하는 ‘얼리엑세스’ 판매를 지원한다.이게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블루홀은 2016년 당기순손실이 249억 원에 달해 현금이 말라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7년 3월 배틀그라운드를 ‘얼리엑세스’로 판매하자 몇 달 만에 수천억 원의 현금이 들어왔다.


성공요인 ④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개인 방송과 협업

배틀그라운드는 소자본 마케팅의 핵심으로 떠오른 온라인‘인플루언서(Influencer)마케팅’의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게임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든 뒤 개발진은 개인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 방송진행자(스트리머) 128명에게 공개 테스트를 부탁했다.마케팅 비용이 부족했던 개발진은 이들 스트리머에게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원하는 설정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트위치 스트리머들은 차별화됀 방식으로 개인 게임방송을 진행하면서 수익도 얻을 수 있었고, 배틀그라운드는 이들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출처 트위치 방송
스트리머들은 차별화된 콘텐츠로 방송을 알리려는 욕구가 크다. 이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제안이었다. 블루홀은 스트리머 각자가 요구하는 게임 속 상황을 만들어 맵 형태로 제공했다. 이로써 재미있는 방송을 통해 시청자 유입 효과를 누리는 스트리머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게임이 됐다. 이는 배틀그라운드를 ‘보는 게임’으로 만들기 위한 김 프로듀서의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 깔려 있었다.배틀그라운드는 공개 테스트 시기부터 트위치 시청 수 기준으로 5위에 오르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보는 게 재미있는 게임은 이내 해보고 싶은 게임이 됐다. 펍지의 최준혁 기획팀장은 “게임을 실제 즐기는 유저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 역시 잠재적인 고객이다. 게임시장에서 전체적으로 ‘보는 수요’가 중요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게임방송과 e스포츠는 야구나 축구 등과 마찬가지로 게임 한 판이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용자의 플랫폼 체류시간이 긴 만큼 그 어떤 광고보다도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 개인 게임방송은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으로 옮겨지면서 입소문 효과도 극대화된다. 이처럼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전환을 정확히 잡아낸 게임이 배틀그라운드다.


언더독(Underdog)들이 한국 게임산업에 불러올 반향
출처 동아일보DB
2017년 12월 21일 PC 정식 버전으로 발매한 배틀그라운드는 2017년 마지막 종합게임순위 1위를 차지했다.다음 목표는 ‘관전하는 게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바로 e스포츠 진출이다. 한국은 e스포츠 강국이지만 그동안 인기를 끈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나 리그오브레전드처럼 외국 게임이었다.

e스포츠로 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장기 흥행의 발판을 닦게 된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2000년대 중반 e스포츠로서 인기를 끌면서 동시에 PC방에서도 인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e스포츠로 인기를 끌면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일 수 있다. 또한 ‘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가 e스포츠 종목으로 개발돼 인기를 끌게 되면 국내 e스포츠 산업과 게임 산업 간 활발한 피드백을 통해 한국 게임 산업 발전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창한 대표는 브렌던 그린을 비롯해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은 유명 게임 개발자가 아닌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 싶은 ‘언더독(Underdog·약자)’이라고 말한다. 이들 언더독의 행진이 한국 게임산업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그 발걸음이 주목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39호
필자 임현석

필자 약력
- 동아일보 기자

인터비즈 박성준 정리 /미표기 이미지 출처 DBR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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