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자라서 불합격?…“남녀 취업자 비율 공개하라”

“스펙·면접역량 더 낮아도 결국 남자가 합격”“공대는 취업 잘 된다? 남자에 국한된 얘기”‘성별 블라인드 채용’ 요구도…“균형 바람직”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 중에 여자는 4명이고 남자는 1명이었어요. 면접관 질문에 남자 면접자는 거의 얼버무리면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친구만 붙었더라고요.”

2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이모(28·여)씨는 최근 면접을 보러 들어갈 때마다 남자와 여자 수를 각기 헤아리는 버릇이 들었다. 면접을 보는 인원은 늘 여자 지원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데 비해 합격자는 남자가 더 많거나 최소 남녀 동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면접장에 남자 지원자가 들어오기만 해도 ‘저 사람은 면접을 잘 보지 않아도 합격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러운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취업 문턱에서 성별로 인해 불리함을 느끼는 여성 취업자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청와대 게시판에서 완료된 ‘취준생 딸을 둔 엄마의 취업 관련 청원’은 모든 기업의 지원자, 합격자 남녀 비율을 공개해달라는 제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청원은 최종 참여 인원 8만 명을 넘기며 마감됐다.

청원을 제안한 ‘취준생 엄마’ A씨는 청원 개요를 통해 “모 대기업 계열사에서 100명을 채용한다고 가정할 때 사람들 대부분은 단순하게 남녀 각각 50명 정도를 채용하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남자 80~90명에 여자 10~20명을 채용한다”며 여자 지원자의 경쟁률이 남자의 5~10배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대기업, 공기업 등 모든 기업의 지원자 및 합격자 남녀 비율을 공개하게 해 달라”는 요구와 더불어 “블라인드 채용을 내세운 기업도 성별이 드러나게 돼 있다. 사진이나 대학을 가리는 기업도 성별 체크는 대부분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취업정보사이트 ‘사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238개 기업 중 63.4%(151개)가 채용시 지원자의 성별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77.8%)이 중소기업(63.8%)과 중견기업(55.6%)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일상적인 취업난 시대에 훨씬 더 두터운 장벽 앞에 선 여성 취업준비생들의 근심도 깊어졌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지난 상반기에 낸 100여개의 서류 중 2개만이 통과해 면접 기회조차 거의 갖지 못한 박모(26)씨는 이제 면접 스터디를 할 때도 남자 준비생은 꺼리게 됐다.

박씨는 “함께 면접을 준비하면서 나보다 학점은 물론 인턴 경험, 해외 연수, 어학 점수 등 모든 면에서 나보다 부족한 남자 지원자들이 늘 먼저 합격하더라”며 “여자라는 사실을 (이력서에) 안 밝히면 내가 붙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한탄했다.

공대를 졸업한 황모(27)씨는 ‘공대는 취업이 잘 된다’는 일반론마저 남자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토로했다. 황씨는 “공대생 출신들이 많이 가는 기업은 남성적인 분위기가 강해 여자를 훨씬 적게 뽑는 경우가 많다”며 “(청와대 청원에) 한 표 던진 것도 기업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남자를 우선시하는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인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은 유리한 성별로 74.2%가 ‘남성’을 꼽아 ‘여성’을 꼽은 25.9%와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여성 취업자들의 우려가 막연한 짐작이 아닌 엄연한 현실일 수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사회 전반에 끼칠 악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승진에서의 차별 등 ‘유리 천장’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아예 취업 통로부터 막혀버린 젊은 여성들이 미래를 꿈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성 취업의 어려움이 심해지면 결혼이나 연애는 2차적인 문제가 되고, 일단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여성들에게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며 “남녀 비율로 인한 갈등과 억울한 측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균형적이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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